하루의 여가
미소야.
너도 알다시피 작년부터 그림 그리기 할 정신적, 시간적 여력이 없어 거의 못 그렸잖아. 엄마 병수발하기에도 힘이 부족하여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보니 취미그림에 할애할 뇌의 창조 주머니가 자꾸 쪼그라들면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지. 하지만 미술학원 출석은 일주일에 한 번 나를 환기시키고 신선한 공기 마실 수 있는 활동이 되었기에 내게 소중한 나들이였어.. 그래서 어려운 와중에도 끊지 않고 꾸준히 학원에 다녔던 거야. 그림에 대한 관심보다 외출, 휴식, 수다, 식사, 바깥공기 호흡 등등 목적은 다른 것에 있었지.. 그마저 없으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것만이 위로였어. 그러면서 설상가상으로 신체의 유연성 마저 떨어지니 그림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자신감은 달아나고 '화가가 될 것도 아닌데 중요하지 않아' 하면서 적당히 합리화시키며 재능 없고 희망 없는 나를 인정, 폄하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야. . . .
열정, 이라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씨앗인 것 같아. 관심의 대상에 남다른 열정이 있을 때는 행복이 따라오잖아. 그토록 찾아다니던 행복이 저절로 내게 흠뻑 스며들잖아. 살고 싶다는 의외의 욕망이 세차게 끓어올라. 삶의 의지가 마구마구 생겨. 살아있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감사해. 시간이 아까와서 자투리조차 함부로 할 수 없어. 너무 소중해. 열정의 유, 무에 따라 삶의 질이,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느꼈어. 그만큼 귀한 것이지.
열정의 씨앗은 정신의 밭에 뿌려져서 장래 무엇을 수확하게 될지 아무도 몰라. 설레는 기다림. 하지만 화려한 결과로 보상하지 않더라도 아쉬울 건 없어. 즐기면서 이미 너무 행복했으니까. 공부도 즐기면 행복해. 세상에는 다양한 행복이 존재한다지만 열정으로 차오르는 만족감은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열정도 영원히 내게 머물지는 않아. 나를 지배하는 환경에 따라 왔다 갔다 해. 따라서 분위기를 조성하여 오래 머물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그것을 가장 오래 누리는 자가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자일 거야.
어제 학원에서 종이 세계의 샤넬, 이라는 '아르쉬지',에 사과를 그렸어. 그런데 도구 빨 때문인지 사과색이 예쁘게, 진짜 사과처럼 그려졌어. 비싼 종이라서 흡수와 발색이 다른가 봐. ㅎ~ 그래서인지 자꾸 그 사과가 눈가에 머물면서 삼삼하니,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 지네~ 오랫동안 잠자던 내 안의 열정이 혹시 돌아오려고 꿈틀대나?
내친김에 오늘은 작년 가을, 학원생 '그룹 전시회' 하고 방치해 놓은 그림 중 맘에 드는 거, 몇 개 꺼내서 거실에 내놨어. 잘 그려서라기보다는 내 작품, 이니까 내 집에서 만큼은 소중하게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툰 솜씨가 돋보이는 수준이기는 해도 '홍시 7남매' 그림이 보기 좋네.. 내 그림을 내 집에 걸어 놓는다는 취지에서는 손색이 없어. 오히려 내 그림이 더 좋을 수도 있지. 높은 애착감. 그지?
어제 원생 중 한 사람이 선물용 그림 두 점, 그려 가는데 보기 좋았어.. 딸이 커피숍을 개업한다고 해. 엄마가 그린 그림을 딸의 사업장에 걸다니 정말 부러운 에피소드 아니니? 그림 그리기 취미 보유자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선물.
음악과 그림과 글쓰기, 독서..
나는 지금 쟤들하고 놀고 있어. 집에 있을 때 항상 나와 같이 있는 애완벗, 들이야. 혼자 있을 때 함께 놀아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
음악은 언제나 배경..
그림 그릴 때, 글쓰기 할 때, 독서할 때, 음악은 켜져 있어도 방해가 안 돼. 오히려 시너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더 많아. 그러니 더욱 사랑스럽지.
두 시부터는 영어 공부도 해. EBS로부터~ EBS는 나의 즐거운 영어 스쿨.. Easy English 1, 2, 3...
듣는 것보다 놓치는 게 더 많지만 그렇게 한 시간씩 들어도 세월이 흐르면 적립되는 실력, 무시할 일 아니라는 사실을 지난 5월 미국, 캐나다 여행에서 실감했단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좋아하며 즐기며 감사하며 살아야 해. 그것이 현재까지 내가 얻은 결론이야.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었을 때는 더욱 향기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