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매일 잠에서 깨면 새로운 '하루',라는 선물이 당도해 있다. 그 시작을 우리는 아침이라고 부른다. 항상 같은 아침인 것 같아도 기분 좋은 날은 찬란한 태양을, 우울한 날은 얼굴 쭈굴한 구름들을, 화난 날은 거친 바람을, 슬픈 날은 질퍽한 비를 동반하고 찾아온다. 겨울에는 때때로 설(雪) 친구를 모시고 오기도 한다. 강설은 어떤 기분일 때 함께 오는 걸까? 센티멘털한 날? 로맨틱한 날?
아무튼 다양한 날씨에 대한 감당은 아침을 선물 받은 너의 몫이라면서, 책임은 너에게 있다면서, 던져놓고 사라진다.
매일 아침, 동행한 날씨 환경에 맞추어 사람의 기분도 스케줄도 달라지고 그에 심하게 영향받기도 한다. 하지만 태양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모두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비나 눈이 온다고 귀찮아하는 것도 아니다. 기호에 따라 사람들의 선호도가 다르고, 직업에 따라 일기(日氣)에 의한 일일 활동 성과나 창조 결과도 다르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호불호가 일정 부분 어떤 길목에서는 공정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게 일리 있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이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시간.
어떤 이에게는 20시간, 어떤 이에게는 22시간이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은 지구살이에서 몇 안 되는 가장 '평등한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으면서 큰 발견이라도 한 듯 자신을 대견해했던 적이 있다.
고민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10년 후, 또는 20년 후 나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하지만 고민이 행동으로 실천되지는 못했다. 매일의 일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회사, 회사, 그저 회사로 출근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똑같은 날을 모른 체하며 무심히 보냈다.
그냥 그렇게 모른 체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결과, 자신을 성장시키거나 업그레이드시키지 못한 채 예순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퇴직자가 되었고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금쪽같은 24시간을 매일 맞이하고 있다. 이 나이에도 시간은 무시하거나 흘려보내서는 결코 안 되는 금싸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시간의 금고'에 의미 있는 '추억과 배움의 밀알'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수명이 길어져 10년, 20년 후 또 한 차례 아쉬운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운동, 여행, 악기연주, 음악감상, 독서, 글쓰기, 캘리그래피, 그림 그리기, 외국어 공부 등등... 찾아보면 개인이 좋아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평소 관심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다가가서 시작하고 도전해 볼일이다. 배움의 장이란 어떤 나이도 거절하지 않으며, 문을 두드리면 항상 두 팔 벌려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다. 언제나 새롭고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준다. 환희의 배움과 학습만이 곧 삶의 의미다. 나이 들수록 그 필요성과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조언하고 있듯이 그 이상 가치 있는 일이 흔하지 않으니까.
나는 요즘 방황의 수렁에 빠져 있다. 지난 1년 어머니의 간병과 영면에 들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 충격과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의 80대를 미리 걱정하며 자신을 그 연령에 대입해 괴롭히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삶 전체가 껍데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이 배달해 놓고 지나가는 '하루', '24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의해 생의 품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요즘처럼 나태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반성해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먼지처럼, 연기처럼 부서진다. 매일 무료 제공받는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건지 오리무중이다.
이 안갯속 같은 터널에서 이제는 서서히 빠져나와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이제 겨우 60대 초입에서 80대의 삶을 당겨서 걱정하며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이제부터라도 10년 계획을 세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을 살아볼 필요가 있다고 자신을 북돋운다. '시간'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선물, 더욱 아끼며 보람되게 사용하여 70대에는 현재보다 성장해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나의 노년을 건강하게, 고독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도 긴요한 실천사항이다.
창조주가 허락한 건강한 미래 20~30년, '생애의 선물'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