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좋은 날
심심해서
책도 읽다가 청소도 해 보고
싱크대 속, 숨어있는 그릇도 정리했다.
심심해서
오래된 옷, 버리고
활동 않는 신발들도 비웠다.
심심해서
호박무침도 하고
당근을 손질하고 감자도 쪄 본다
심심하여
오래전 이별해야 했을
연습그림 찾아
수십 장, 손이 아프도록 파기했다.
그래도 심심하여
다시 스케치하고
색을 입혀 보기로 한다.
언젠가 내 손으로
파쇄하게 될 그림, 이겠지만
지금은 심심하니까...
소유한 잡동사니 중
버릴 물건이 반 이상.
애착인가, 집착인가, 미련인가,
모두 부여잡고 산다.
심심하지 않으면
갈무리와 버리기의 시간도 없다.
때로는 심심해서 따분한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심심해 보니 알겠다.
중요한 일에 유익한 무료함이다.
다시 미치게 심심한 날에는
책장 안, 웅크리고 있는 책들 호출하여
머릿속 가득한 먼지와 게으름도 털어 내리라.
심심한 날에는
무엇이든 비우기, 에 집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