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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부활을 위하여...

by 박미라

꽃을 그리기에는, 아무래도 실력이 부족하다 느껴지고, 나무를 그려보아도 원하는 풍경이 나오지 않아 '역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구나. 평생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맞았어.' 자꾸 자책하게 되니 그림 그리기 싫어진다. '언젠가 파기해 버릴 허접한 그림을 양산하여 집 안 어지럽게 쌓아두면 뭘 하나,' 라고 생각하니 아무 의미가 없다. '내려갈 산을 왜 오르는가,'와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10년은 그림 취미로 즐겁게 살겠구나' 욕심냈는데 이렇게 빨리 권태의 시간이 찾아 오다니...



지금의 나는 3년 전 자화상을 스케치하며 그렇게 행복해하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 당시 그리도 행복해하던 그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 그림도 자신과 궁합이 맞는 분야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마 인물 그리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 것 같다. 인물화, 자화상이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그림에 접근도 안 했을 것이다. 학원 선생님은 나의 인물화를 보고 풍경화나 정물화를 하면 더 잘할 것 같다, 고 권유했다. 물론 나도 풍경화나 정물화를 잘 그려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 후, 나는 해바라기 등 꽃을 그리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안목(眼目)은 성장했고 달라졌다. 안목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실력은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행복 느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정물을 그리면서 나는 계속 실패와 패배감을 반복하여 경험하고 있다. 실패의 경험은 그것이 싫어지게 하며, 심각한 권태를 부른다. 그리고 마침내 이별을 선언할 지도...



하지만 아쉬운 결별을 피하기 위해 걷다가 피곤하면 영양제로 위로한다. 뛰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김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멀리서 응원하는 산과 하늘, 자연의 기운을 충전하여 땅을 짚고 용기있게 일어나 다. 마음속 불꽃이 꺼지려 하면 정성을 모아 씨앗불에 부채를 부친다. 열정이 다시 살아나도록...





열흘 전, 김해시에 살고 계신 이모 부부가 다녀가셨다. 나는 자작(自作)한 그림 네 점을 선물로 드렸다. 사과, 감, 해바라기, 그리고 이모 손자의 초상화... 이모는 기대 이상으로 좋다면서 만족해하셨다. 이모 부부의 만족과 격려가 나를 기쁘게 했다. 칭찬이 권태라는 독감을 호전시키는 치료약이 되었으며, 작품을 애정하게 하는 의외의 촉진제가 되었다. 그림 그릴 한 가지 큰 이유를 발견했다고 할까? 그렇다. 취미 그림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다양하고 진실하다.

첫째, 깊은 사색을 유도하여 두뇌를 자극한다.

둘째, 쇠퇴해 가는 창의성 향상에 이바지한다.

셋째, 일주일 중 하루는 규칙적으로 살도록 도와준다.

넷째, 공통 취미 소유자들과 유의미한 소통을 하게 한다.

다섯째, 지인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


취미 그림 활동의 장점을 나열해 놓고 보니, 하나하나가 진정 감사할 일이다. 그림을 취미로 즐길 수 있게 나를 찾아와 준 생애의 하객(賀客),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게다가 그로 인해 만나게 된 그림 연습생들, 그림 친구들은 따로 기울인 노력없이 획득한 소중한 인연 아닌가. 어쩌면 이런 행운이! 초심을 잃고 교만했다. 감사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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