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능적으로 홀수를 선호한다.
'모태솔로를 탈출할 수 있는 0가지 방법',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위한 0가지 팁' 같은 정보성 콘텐츠는 숫자가 들어간 제목을 많이 쓴다. 이때 대부분의 콘텐츠 제작자는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이번에는 몇 개의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 일단 3개의 팁을 넣은 콘텐츠로, 컨펌을 요청한다. (오늘은 월요일이야! 쉬엄 쉬엄 갑시다!)
답변이 왔다. '정보가 좀 더 많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고민이 시작된다. 5가지 팁 혹은 7가지 방법으로 재 컨펌을 요청한다. 4개나 6개로도 할 수 있지만, 왠지 홀수가 나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자마자 메일을 보냈는데, 답변이 오후 5시에 왔다. '진행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왜 이제서 연락을 주는 걸까?)
실제로 마케팅(광고)에서는 짝수보다는 홀수로 제안을 했을 때, ok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쯤 되니, 마케팅에서 홀수의 보이지 않는 마력에 대해 궁금해진다. 일단 컨펌이 됐으니, 유튜브로 바비킴의 '사랑 그놈'을 튼다. 예정에 없던 야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5개를 짤 걸...홀수..그놈...광XX..XX'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짝수보다 홀수를 선호한다. 인류는 예전부터 좋은 일이 넘치면, 다음에는 부족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반대로 하면 '이번에 살짝 부족해야, 다음에는 좋은 일이 생기겠지' 같은 생각들 말이다. 사자성어 새옹지마가 이러한 뜻에서 유래된 거다.
홀수는 항상 1개가 남는다. 불균형한 숫자이며, 완벽할 수 없다. 이러한 심리적 요소는 정보성 콘텐츠의 제목에 딱 부합한다. 사람들이 정보성 콘텐츠를 누르는 이유는 '정보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이다. 현재의 부족한 나를 채워준다는 것. 3~9개의 정보를 통해 나의 불완전함을 채우려는 욕구가 반영된 거다.
아이스크림은 홀수 단위로 오른다?
1980년대 부라보 콘 1개의 가격은 300원. 90년대에는 500원이었고, 나중에는 700원으로 올랐다. 왜 홀수단위로 가격을 올렸을까? 소비자들은 제품 가격이 '홀수'일 때, 더 저렴하다고 느낀다. 수리 심리학에서는 이 것을 '홀수가격이론(Odd Price Theory)'이라 부른다.
홀수로 구성되는 제품 라인업
몇몇 기업들은 제품명에 홀수만 붙인다. 이때 큰 숫자가 붙을수록 프리미엄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인텔의 CPU 프로세서 '코어 i' 시리즈다. 3-5-7-9로 구성되어 있으며, 숫자가 클수록 보급형-일반용-고급형-전문가용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 기아자동차의 'K' 시리즈 라인업도 홀수로 되어 있다. K3는 2,113만 원이지만, K9는 8,660만 원이다.(2018년형 기준)
9,900원이 아닌 10,900원의 기적
10,000원짜리와 9,900원은 100원의 차이.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은 100원 이상이다. 요즘에는 100원을 내리는 것보다, 오히려 900원을 올린다고 한다. 왠지 9,900원 짜리 제품은 성능이 안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아래 제품은 10,900원이네? 얘는 9,900원짜리보다 훨씬 좋겠지?라고 생각한다.
천원 차이밖에 안나니, 뭐 어때? 라고 생각하며 구매한다. 100원을 아끼려다, 1,000원을 더 주고 구매하는 셈이다. 제품이 더 좋을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이렇듯, 제품의 판매가에 3,5,7,9 같은 단수를 붙여 판매가를 소비자가 스스로 납득하고, 구매하게 하는 것을 단수가격결정법이라고 한다.
마케팅에서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숫자로 된 데이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숫자까지도.. 추상적인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뭉치고 뭉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5가지로 컨펌받을 계획이다)
-
초보 마케터(광고인)을 위한 실무가이드 'Skill'편
44년간 흑자를 낸 유일한 항공사, 사우스웨스트
필라이트가 카스보다 40% 저렴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