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장이 팔린 '손에 손잡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1,218대의 드론이 만들어낸 오륜기 퍼레이드, 충격적인 비주얼의 '인면 조'는 유교 드래곤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뛰어난 우리 민족답게 커뮤니티에는 재미있는 개막식 짤들이 돌아다녔죠.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던 순간은 우리나라 선수단 입장곡으로 '손에 손잡고'가 울려 퍼질 때입니다. 한 번씩 들어보긴 했지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게다가 이 노래가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공식 주제곡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에서 1,700만 장(추정치)이 팔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주제곡 '손에 손잡고(영어: Hand in Hand)'는 독일, 일본, 홍콩, 스위스, 스페인을 비롯한 17개 나라 싱글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올림픽 주제곡으로는 얻기 힘든 기록과 명성을 남긴 덕분에, 아직까지도 전 세계의 올림픽 관계자들은 이 곡을 최고의 올림픽 주제곡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 우리나라 음악계에서는 절대로 선정될 수 없는 노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당시 올림픽 조직위는 전 세계 음반 기획사를 대상으로 견적을 요청했습니다. 그중 스위스의 폴리그램 사는 노래는 '손에 손잡고'를, 음반 프로듀서는 조르조 모로더, 가수는 코리아나로 제안했습니다.
그 외에 음반 제작 & 유통 비용을 모두 제작사가 부담하며, 저작권은 헌납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게다가 100만 장 이후의 판매분에 대해서는 음반 1장당 3%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르조 모로더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것도 한몫을 차지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는 80년대에 매우 유명했습니다. 영화 플래시 댄스, 탑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영화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 음악상을 3번 이상 수상한 실력자였습니다. 물론 조르조 본인도 '손에 손잡고' 작곡을 위해 우리나라의 노래를 3,000여 곡 이상 들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른 코리아나 역시 해외에서는 인기를 얻었던 그룹입니다. 1962년 한국에서 결성된 코리아나는 주로 해외에서 활동했습니다. 동남아, 중동, 프랑스를 거쳐 1975년 스위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교포들이 만든 3류 가수 정도로 취급했으나, 유럽에서의 '코리아나' 인지도는 상당했습니다.
1980년엔 서독 ARD(= KBS) 인기 프로그램 '무지크라덴(Musikladen)'에서 유럽의 음악 그룹 Top 10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같이 선정된 TOP10에는 스웨덴의 아바, 칭기즈칸으로 유명한 칭기즈칸 등이 있었죠. 즉, 전 세계의 축제인 올림픽 주제곡을 부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실력자들이었던 거죠!
강렬한 베이스 기타음과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당시 경합을 벌었던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도 활기차고 리듬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에 손잡고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평이 큽니다. (대신 폐막식에서 김연자 씨가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2017년에 EDM 사운드의 이 노래로 초대박을 치게 됩니다)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던 냉전(독일 통일 89년, 소련 붕괴 90년)이 종결되기 직전이었던 만큼, 가사 역시 평화에 대한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냉전이 한창이었던 80년대 초반까지도, 사람들은 핵전쟁을 우려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명곡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불렀다간, 목이 나갈 수 있습니다. 남자 음역대가 Bb4(2옥타브 라 #)까지 올라갑니다. 정점만 찍고 내려오는 게 아니고, 계속 유지됩니다. (오늘날 노래로 비교하자면 노을- 전부 너 였다. 바이브-사진을 보다가, 야다-진혼 등이 있습니다.)
평창올림픽의 폐막식은 2월 25일 저녁 8시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가수는 이미 엑소(EXO), CL(씨엘)이 출연한다고 하는데요. 노래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88년 잠실 주경기장에서 울려 퍼진 손에 손잡고를 원하는 만큼, 한번 더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