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직도 어렵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정말로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맞다. 나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다. 특히 자존감이 높을수록 방어기제는 더 단단하다. 당시 나의 자존감은 꽤 높았었다. 쓸데없이
"내 말을 인정할 수 있겠어?"
"못하겠지? 그게 너야."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말을 듣고 그것을 또 인정해야만 할 때, 느꼈던 감정들은 나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분노였다. 어째서 나는 내가 이런 상황을 겪게 만들었을까. 라는 자책과 함께
더군다나 그걸 인정하는 대답을 상대방이 듣기 원하면 더 괴로워진다. '드드득' 이빨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갈린다. 나중에 보니 주먹은 너무 쎄게 쥐어서 손가락 인대가 늘어났더라.
이렇게까지 힘들었던 건, 그 대답을 하려면 내가 나를 스스로 인정해야 했다. 그게 어려웠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야 내가 큰다. 바닥으로 쳐박히려 하는 자존심의 끈을 이제는 놓을 때다.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 맞습니다."
인정했다. 거기서 대화는 끝났다. 차올랐던 분노가 점점 가라앉는다. 그 동안에는 시계 초침 같은 작은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눈 앞의 것들은 다 느리게 움직인다. 정지해있는 것들조차도 어딘가에 빨려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삶이 인터스텔라의 실사판이다.
"그래 맞아."
"사실 나는 있어보이려던 허접이었던게야."
그 후로 자존심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서랍에 넣었다. 자존감은 낮아졌다. 적정수위로 맞춰졌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이제서라도 버리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더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아직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