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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시간들

나의 이야기 1

세상의 시선으로 남부러울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나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졸업때까지 하숙을 했다.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대학 4학년때 내가 처한 현실 (부모님이 지원해줄 수 없음, 뛰어난 연기력이 아님..)을 깨닫고 나서야 접을 수 있었다. 취업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점은 겨우 졸업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고 준비된 영어 점수도 없었다. 취업시장은 꽁꽁 얼어붙어있었고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학벌을 제외하고는 어떤 회사에서도 반길만한 스펙이 내겐 없었다.

사귀던 남친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아빠는 내가 졸업하면 재력가의 아들과 선을 보게 해서 결혼시키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남친의 어머니로부터 내가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 집은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와 헤어졌다고 말하고 아빠가 힘겹게 마련해준 학비로 교육대학원에 들어갔다. 사실상 매일 남친을 만나며 대학원에 다녔는데 어느 날 아빠 측근의 제보로 들통이 났다. 대학원 1학기를 겨우 마쳤을 뿐이었지만 노발대발하는 아빠의 모든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더 이상 혼자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며 다닐 수는 없었다. 부산으로 끌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어디든 취업해서 돈을버는 것뿐이었다.

당장 취업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취업사이트에서 남친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검색하던 중 한 무역회사의 약간의 무역업무를 겸하는 비서직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의 규모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력서를 넣자마자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 왔고 일주일 후 바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회사 근처로 작은 방한칸을 얻었고 나는 그렇게 집에서 온전히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다.

생각지도 않던 취업을 하게 만든 애증의 남친과는 회사를 다닌 지 얼마지나지 않아 헤어졌다(아니 차였다). 이별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감정은 바닥을 쳤고 회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더 나은 연봉을 받기 위해 한 전도유망한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지만 기쁨도 잠시.. 얼마 후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택시 사고였다. 뇌사 직전까지 갔던 언니는 반식물인간 상태가 되었고 하나뿐인 언니를 잃은 나는 내게 닥친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슬픔에 잠긴 부모님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다. 매일 혼자 있을 때면 계속 눈물이 났다. 택시회사의 보상금은 언니 병원비의 절반도 안되는 액수였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 사정도 주식시장에서 큰 사건이 생긴 이후 급격히 어려워졌다.

매일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따듯한 시선을 덧입혀 보니 내 모든 결핍들은 나를 성장시켜 주었다.

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 원하지않는 방향으로 흘러갈지라도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지금의 순간은 언제나 내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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