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기독교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AI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유와 목적에 따라서 AI를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AI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는 이유 혹은 목적 역시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나는 단지 AI에 관심이 있거나, 흥미로와서 굳이 시간을 들여가면서 브런치에다 AI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AI가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2017년부터 AI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주제가 나의 전공 분야인 기독교상담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AI를 연구하다 보니, AI와 그의 철학적/문화적 기반이 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인류애게 매우 위협적이며, 단지 기독교상담학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인간관 및 세계관과 너무나 상반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매우 다양한 기독교적인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 주요 이유만을 간략하게 말하려고 한다.
이어지는 글들에서, 이 두 이유에 대한 보다 실제적인 부분들을 다룰 예정이다.
"AI는 발명품이 아니라, 창조물이다"
AI는 인간이 만들어 낸 그 어떤 발명품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까, AI는 인간이 만들어 냈지만 기존의 발명품과는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AI는 인간의 발명품이라기보다,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러니까, AI는 인간이 만들어 낸 상품(product)을 넘어, 창조물(creature)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명품들은 기계 자신만의 모습을 가지고 각 자에게 맡겨진 기계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AI는 인간이 소유한 감정적, 행동적, 인지적인 요소들을 두루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동일한 일들을 대신할 수 있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화기는 전화기의 형태를 가지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도구이다. 세탁기는 세탁기의, 컴퓨터는 컴퓨터만의 모양을 가지고 각 기 할당된 역할을 기계적으로 해 낸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명품에 비해서 그 역할과 작동 원리 등이 완전히 다른 혁명적인 기계인 것이다. 즉, 인간은 지금 인간의 지능과 모습을 닮은 휴머노이드 기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AI를 일종의 독립적 행위 주체자로 보았으며, 외계 지능(Alien Intelligence)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AI는 이미 어느 면에서는 인간보다 뛰어난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개발 속도를 보건대 빠르면 (혹은 늦어도) 10년 정도 후면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초지능’AI가 출현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아직은 이르지만, 이제 멀지 않아 AI는 인간의 감정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이미 인간을 닮은 행동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AI가 만들어졌으며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 행동, 감정을 닮은 기계. 그래서 AI는 단순한 발명품이 아닌, ‘창조물’이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탄생’ 한 것이다. 인간은 유전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생명체이며, 인간을 닮은 AI는 기계적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가 단지 만들어 낸 '상품'이 아니라, '창조물'이라는 점이 왜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한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식물을 비롯한 다른 모든 창조물보다 하나님의 모습과 속성을 가장 닮은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그 인간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불어주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인간들은 자신의 능력과 모습을 빼닮은 AI를 창조하고 있다. AI 개발자들과 기술 전문가들은 AI를 개발할 때부터 인간의 모든 속성과 습성을 모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닮은 기계적 생명체의 탄생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인 무에서 유의 '창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인 셈이다.
"AI는 인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뒤흔들 것이다"
AI가 인류에게 가져 올 커다란 영향 가운데 하나로 AI의 도래로 인하여 인간에 대한 개념의 혁명적인 전환을 들 수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월등한 지적 능력과 아울러, 자아성찰, 상상, 존재에 대한 인식과 고찰, 매우 다양한 감정 표현, 자아인식 등의 능력을 가졌다. 이러한 능력이 오랜 시간 걸쳐 더욱 발전해서 각 종 도구의 발달과 언어, 예술, 의료, 과학과 기술 등의 문명을 이루어 왔다,
반면에, 지적, 감정적, 행동적 차원에서의 높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나이 듦과 병듦과 죽음이다. 인간이 아무리 건강하고 과학과 의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노화와 암을 비롯한 각 종 질병에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죽음은 모든 인간의 마지막 종착점이다.
그러나, AI 시대가 돌입하면서 그러한 인간의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치명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바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 또는 공생이다. 현재는 AI가 일상생활과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함으로써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인간에게 제공해 주는 차원에 있다. 그러나, 일부 AI 전문가들과 개발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AI가 인간의 몸과 결합되어 인간이 생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노화와 병듦 심지어 죽음까지도 초월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강한 AI론을 펼치고 있다.
인간과 AI가 결합된 기계 인간(machine-human) 또는 인간 기계(human-machine)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인류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AI는 기계를 넘어, 하나의 존재로 인식된다. 일부 전문가들의 표현처럼 ‘신인류’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영국의 한 AI 연구원은 AI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여 인간이 필요 없는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가 될 수도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의미 있는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질문들이 AI 앞에서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나만의 억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