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보다는 향상, 하나님보다는 인간
"치료보다는 인간 조건의 향상을 지향"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기독교가 트랜스휴머니즘의 주장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와 세번째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제3화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트랜스휴머니즘은 유한하고 한계를 가진 인간 조건을 더이상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이 아니라고 간주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인간의 조건들을 그저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운명에 순응해 왔다면, 이제는 인간의 한계적인 조건들을 진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을 진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모든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질병과 죽음은 나노 기술, 컴퓨터 공학, 인지 과학, 정보 과학, 뇌 과학, 신경 과학 등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향상하거나 증강할 수 있는 대상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단순한 질병의 치료(therapy)가 아니라 인간 조건 자체의 향상(enhancement)을 지향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걸리는 독감이나 바이러스, 암, 치매와 같은 질병들은 분명 치료를 해야 하고 치료 받아야 한다. 질병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에서 의료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 그러한 의료 과학 기술의 발전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트랜스휴머니즘이 주장하는 것처럼 질병에 걸리거나 취약한 부분 그 자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인간의 생리적, 신체적, 생물학적, 지적인 능력을 기계의 힘을 빌려서 향상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셨다. 슈퍼맨이나 슈퍼우먼 같은 초인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병들고 연약하며 부족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닥뜨려야만 하지만,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테드 피터스(Ted Peters)라는 학자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인간 향상’ 목적을 비판하면서, 치료는 건강한 상태로 회복하려는 병리학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향상은 병리학적인 요소와는 관계없이 보편적인 인간의 능력이나 조건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피터스의 구분처럼, 아픈 사람이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회복을 목표로 하는 치료는 얼마든지 해야 할 일이다. 감기에 걸린 사람은 감기약을 먹어야 한다. 암에 걸린 사람은 치료 가능성이 있는 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아프지도 않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아예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거나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여 죽지 않고 영원히 살려는 시도에 대해서 기독교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아닌,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저항의 뿌리에는 원초적으로 ‘인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괜찮아, 먹어 봐!”이런 뱀의 유혹의 속삭임은 다름 아닌, 신과 같이 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을 논하면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또 하나의 쟁점은 철저한 인본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 즉,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간의 본성과 조건을 ‘인간’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완전히 거스른 채,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인간 조건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초특급 과학 기술 시대의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리 몸의 비밀을 캐내어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하고 변형하며 복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뇌 과학, 인지 과학, 컴퓨터 공학의 엄청난 발전에 AI라는 날개를 단 인간들은 인간 자체를 개조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에 걸리는 몸, 낮은 기억력, 미숙한 운동력, 너무 쉽게 상처받는 마음, 운동 신경이 둔한 것 등 이 모든 연약함이 아직 덜 발달 되고 미숙해 보여서 싫은 것이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 자존심에 생채기가 난다.
현대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스스로 인간을 개조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고 있다. 진화의 방향은 오직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진화되어야 하며, 제거해야 할 인간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 방향도 인간에게 달려 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을 안 믿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마치 현대판 사사 시대를 보는 것만 같다.
그저 인간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좋을 대로 인간을 개조하여 인간의 몸과 마음을 AI를 비롯한 기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조립해서 우스꽝스러운 괴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영적으로 너무나 위험한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님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가진 많은 약함과 결핍된 것들은 진화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도록 아름답게 사용되는 거룩한 도구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위기에 빠진 인간의 모습은 무엇인가? 우리가 견고하게 지켜야 할 기독교적인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다음 화부터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