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이야기와 기계적 이야기

by 장보철

본격적인 AI 시대를 마주하면서, 우리들은 새삼스럽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인간이 해야 할 많은 역할들을 AI가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더 잘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놓이면서, 인간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지난 학기말 시험에서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읽다가 문득 여러 개의 답안들은 사람이 아닌 AI가 썼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AI를 통해서 발표할 내용, 목차, PPT 자료와 영상까지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 학생은 무슨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전공과 교과목의 특성상,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어야만 하는데, 그것 조차도 AI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과연 앞으로 그들이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의 상처받고, 울부짖으며, 희망을 찾아가려는 마음과 이야기들을 어떻게 듣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분석하려고 하는지 참으로 걱정이 앞선다.


직접 고민하고 사람을 만나고 작성해서 받는 B학점보다 AI를 동원해서 아주 그럴듯하게 완벽해 보이는 과제물로 받는 A 학점이 더 낫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과제물에는 감정도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도, 그러한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경청도 없다. 그냥 모범답안만 있을 뿐이다.


상담 기법 중에서 이야기 치료라는 기법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야기 속에 그 사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중요한 단서들이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 치료 기법의 선구자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와 데이비드 엡스톤(David Epston)이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들의 경험을 구조화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똑같은 일을 경험했더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법과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엄청나게 고생하였다. 만일, 가장 친한 친구가 코로나 기간에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고 싶으면, 그가 코로나 기간의 경험 가운데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살피면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만, 어떤 이야기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고, 다른 이야기는 잊고 싶고 할 수만 있으면 기억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뿐이다. 목회상담학자였던 고 안석모 교수 또한 이야기를 인간을 만들어가는 힘으로 간주하면서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온 삶을 해석하는 해석적 렌즈 역할을 하며 또한 계속해서 인생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가 내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일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이야기 자체이며, 인간의 삶은 다양한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그것도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 생각, 감정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때로는 격하게 요동치는 이야기다. 흥분, 감탄, 환희, 격정, 감동, 비탄, 슬픔, 애도, 눈물, 기쁨, 울부짖음 등이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곳이 바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 안에 자기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인간이란 바로 꿈틀거리는 이야기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만나는 불행과 아픔과 절망의 이야기들을 트랜스 휴머니즘이 주장하는 AI 기계와의 공생과 상생 속에서 삭제 혹은 변형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삶의 많은 과정을 상실하며 살아가는 너무나 ‘가벼운’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최근 오픈 AI는 동영상 생성 AI인 소라(Sora)를 공개하면서 챗GPT에 이어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인간이 텍스트만 주면 그에 맞는 영상을 단 몇 초 만에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낸다. 놀라운 것은 단지 속도만이 아니다. 품질이 프로급의 영상제작자가 만든 것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그러한 영상은 아무리 정교할지라도 기계적인 상상력이 만들어 낸 기계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인간의 삶의 모습과 여정의 창조물을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수 없는 인간은 어쩌면 그 자체로도 이미 인간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기계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AI가 만들어 준 사람과 도시와 자연은 기계적 이야기이다. 그 안에는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다. 자신이 토해내고 만든 정보들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이용되어 왔는 지를 그저 ‘정보’의 차원에서 알려줄 뿐이다. AI는 직접 인간의 삶의 현장을 살아보지 못한 기계적 존재일뿐이다.

그러한 휴머노이드 AI가 진짜 인간과 뒤엉켜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와 같은 이 시대의 인간들이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AI와 결혼해서 혼인신고까지 한다는 인간들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떤 미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의 마음과 뇌는 AI를 이용한 기억의 삭제로 치유될 수 없으며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치료’는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작업이지만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다. 환자의 몸과 마음에 꿈틀거리고 요동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내담자나 환자는 자신의 쓰라리고 아픈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희망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삭제’는 우리 뇌에 저장된 불행하고 부정적인 기억들을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기계적 치유’라고 부르고 싶다. 아예 없애 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AI 기술을 이용하여 ‘삭제’하면,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어떤 기억만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AI와 달리, 인간에게는 꿈틀거리는 이야기를 가졌기에 불행하지만 그 안에 행복이 있고, 슬픔이 있지만, 기쁨을 발견해 가는 것이다. 틀에 맞춘 완전히 나에게 맞춤형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 것은, 생각과 감정과 이야기의 공백이 있어서 일 것이다. 숨은 여백이 있을 때 쉬게 된다. 그 여백이 메꾸어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불행히도 숨 못 쉬는 인간의 끝은 죽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트랜스휴머니즘 - AI의 신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