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화에서 인간이 써 내려간 이야기와 AI가 만든 이야기 사이의 큰 차이로 인간의 이야기는 기계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꿈틀거리는 이야기 안에는 많은 고통, 고난, 슬픔, 울부짖음의 감정과 사연들이 담겨 있다.
때로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주는 누군가와의 죽음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과 죽음을 피하기를 원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인생 살아가는 길이 꽃길이었으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부러 극한 고난과 고통과 상처와 아픔과 때 이른 죽음을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목회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시는 목회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요즘은 더 힘들단다. 특강이나 설교하러 갔다가 함께 차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쩌다’ 목사가 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연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 인사말은 동일하다. “목회가 쉽나요?” 목회가 쉽지 않은 길임을 알고 받아들이며 가는 것이다.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생길 살아가는 게 어디 그리 쉽나요? “가 정답인 것 같다. 몸이 좀 아프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고되다고, 시험 좀 못 봤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일이 너무 안 풀린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경험하는 실패와 좌절, 병듦과 노화, 성공과 환희, 건강과 젊음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며, 때로는 가슴 아리게 해 주는 재료들인 셈이다. 성경 어디서도 평탄한 꽃길만 걸었던 사람은 찾을 수 없다. 성경에서 흔히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만 보더라도 참으로 기가 막힌 인생길을 걸은 사람들의 리스트가 나온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이 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 고백할 정도다 (고린도후서 11:24-27).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 꽃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시고 30여 년 동안 시기와 질투와 모욕과 비난 속에서 사시다가 결국 십자가라는 고통의 클라이맥스를 거치면서 부활하셨다.
이렇게 본다면, 고통, 결핍, 질병, 죽음 등은 인간의 미래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경험하지 않도록 인간 자체를 향상 혹은 증강해야 한다는 AI 숭배자들의 주장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제거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여, 인간에게 아무런 결핍과 고통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행복과 기쁨과 부요함의 이야기로만 가득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한 생각은 인간을 너무 물질적이고 기계적으로만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지나온 과거와 현재를 힘들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희망의 이야기로 다시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크고 작은 문제와 한계, 고난과 상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자기 자신과 삶을 믿음 안에서 재조명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하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인정하는 새로운 영적인 재탐색(spiritual arousal)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현재의 인간종과는 전혀 다른 신인류의 출현을 꿈꾸는 강한 AI의 주창자와 트랜스 휴머니즘의 철학은 이러한 인간의 능력과 본성을 인간 조건의 한계라는 명분으로 무시하려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처럼, 초지능 AI에 장착된 기계 장치들이 인간을 더 향상된 능력으로 고통도 결핍도 없는 진화된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그때 오히려 우리는 인간도 신도 아닌 무존재(無存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지 않는 고통을 경험하게 될 때, 아예 그 경험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과 고통을 믿음의 눈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로 바꾸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인지는 자명하다.
생물학적이고 신체적인 노화를 AI 기술, 인지공학, 뇌 과학과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활용하여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은이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고통과 고난, 슬픔과 결핍은 제거해야 할, 아직 진화가 덜 된, 인간에게 전혀 바람직스럽지 못한 제한된 조건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의 결핍들은 우리들의 삶을 더욱 성숙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재료들인 것이다. 기계는 눈물을 삼킬 수 없지만, 인간은 눈물을 삼킬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