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차례에 걸쳐, AI 시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즉, 인간은 단순히 기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이야기를 가진 존재이다. 또한, 그러한 인간의 이야기 안에는 다양한 감정들, 희, 로, 애, 락 등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희와 락만이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로와 애 역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장치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에게 누군가가 지나간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적지 않은 대답이 상처와 고난 가운데 다시 일어났던 경험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AI를 비롯한 4차 혁명의 테크놀로지를 등에 업은 트랜스휴머니즘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러한 상처와 고난과 결핍을 아예 없애면 인간은 그제야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라는 주장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성찰하면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뜻한다. 우리 몸은 병들고 아플 수 있다. 때로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차키를 찾아 한참 동안 여기저기 헤맬 수 있다. 그러한 약함과 결핍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찾아간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는 각자 경험한 인생 이야기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상처와 좌절 투성이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 들이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러한 사건들을 경험한 그 자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들이 부여한 가치와 의미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고 대수롭게 여길 만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구를 살린 것 같은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 속에서 긍정적인 의미들을 만들어 가면서, 인간은 더욱 성장과 성숙해지는 것이다.
챗GPT를 비롯한 AI 기술들의 활용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장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약한 AI 정도는 인간의 일상사가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차원에서 인정할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AI의 개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더 나아가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인간이 아닌, AI가 급속도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만일, 인간의 뇌와 기계에 AI 기계를 장착한다거나, AI가 인간이 일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정말로 그런 끔찍한 일들이 발생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도대체 어떠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AI 테크놀로지가 현실화한다면, 정작 사람들은 사고하는 습관과 방법조차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나만의 기우일까.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사고하지 않게 되며, 결국, 자기 자신, 타인, 일 등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AI가 이끌 미래의 모습은 더욱더 암담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계가 아닌, 그분의 창조물인 인간과 함께 그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인생에서 부딪히는 온갖 시련과 고난과 역경을 믿음 안에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성경적인, 기독교적인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어떤 이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도 시련과 문제가 일어나면 시험에 들어 하나님을 원망한 나머지 믿었던 신앙까지도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앙생활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신앙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기도하며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평생에 걸친 신앙의 과정이다. 그것이 곧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 역시, 교회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AI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치 AI가 신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쩌면 지금보다도 교회와 기독교인의 수는 현저하게 낮아지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AI가 훨씬 더 강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느끼기 마련이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보다, 엄청난 속도와 정확도를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즉각적으로 내놓는 AI를 더욱더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AI와 트랜스휴머니즘이 그리고 있는 그런 미래의 모습 속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은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인 가치와 의미들을 만들어가는 긴 여정을 붙들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고난과 죽음에 직면할 때, 초월자인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의미 있는 희망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