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고, 현재 만들어가고 있으며, 미래에 만들어 갈 이야기들은 바로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다시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이야기일지라도, 인간은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가는 존재인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혼자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들이 가는 인생길 각 길목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의 이야기들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이야기하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과 동행하신다. 모세를 보내시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자신을 ‘너희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라고 말씀하신다(출애굽기 3:15-16).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이삭은 이삭의 이야기를, 야곱은 야곱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지만, 3세대에 걸쳐서 지속해서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즉, 성경에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이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끄심,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와 절망 그리고 회복의 이야기가 넘실댄다. 그들의 인생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이야기들이 하나님과 만나 놀라운 반전을 이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 23편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다윗의 인생 고백이다. 숱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었다면 이러한 고백은 없었을지 모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나님과 사람의 이야기는 단지 성서의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다양한 이야기를 삶 속에서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희망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비록 살아가는 과정이 늘 쉽고 평탄하고 꽃길만 가는 것은 아니지만, 견디고 참아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굳게 잡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의 이야기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인간의 뇌에서 부정적이고 불행한 기억들과 이야기들을 삭제하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와 더불어 하나님의 이야기를 삭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만일, 그런 기술이 정말 우리 시대에 실현이 된다면, 비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 조차, 불면증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들과 감정들의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려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고난과 아픔과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셔야 하는 걸까?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시원하게 답을 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그 애매모호함은 더 이상 인간의 믿음에 호소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 속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교회 공동체가 같이 나누며 넉넉한 기도로 능히 이겨나갔던 우리들의 믿음은 이제는 고리타분한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되어 세련된 테크놀로지 앞에서 내동댕이쳐짐을 당할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교회와 기독교의 위기가 이제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