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가 필요한 이유 : 내 마음의 안전기지
감정일기 강의를 하면서 항상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감정일기와 그냥 일기의 차이점이 뭐예요?”
“감정일기를 쓰는 이유가 뭐예요?”
“감정일기 쓰면 뭐가 좋아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기는 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등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초등학교 때 숙제로 썼던 일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 감정일기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서 감정 단어를 활용하여 쓰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어디에 ‘집중’하느냐입니다. 감정일기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일지’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고 겪은 일에 대한 ‘감정’에 집중해서 쓰는 것입니다.
그럼 감정일기를 쓰는 이유는 뭘까요? ‘감정적 폭로’ 또는 ‘표현적 글쓰기’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일기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감정일기가 건강상의 이점을 잠재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대한 것인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가슴에서 꺼내는 행위’ 자체로 강력한 치료제가 됩니다.
현대 사회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정신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정신적인 문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감정과 생각을 처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쌓아두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해결되지 못한 억압된 모든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감정이 표현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전체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객관적 사고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정일기는 치료적인 힘을 갖습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감정일기는 마음의 안전기지가 되어줍니다. 우리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각자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를 지지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습니다. 인간은 필요한 시기에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에 변화가 생기고, 감정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건강한 발달 과정에서 주변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가장 따뜻하고 안락한 안전기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애착이론가인 존 볼비(John Bowlby)는 안전기지를 힘든 상황에서 쉴 수 있는 피난처라고 표현했습니다. 산행 중에 만나는 대피소와 같은 역할입니다. 지치고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안심하고 편안하게 기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는 것이 안전기지입니다. 대체로 영아기에 부모와 맺은 애착 관계를 통해 가족이 안전기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일기 수업에 참여했던 초등학교 3학년 하연이는 낯가림도 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특히 새 학기만 되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등교를 거부하는 날이 반복되면서 부모님과 하연이 모두 힘들어했습니다. 아직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이 미숙한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낯선 교실과 선생님, 낯선 친구들, 어렵게 느껴지는 공부에 대한 두려움, 불안, 부끄러움, 긴장감 등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고민하던 부모님은 결국 하연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기로 했습니다.
하연이는 학교에 도착하면 교문 앞에서 엄마와 인사를 하고 힘없이 교실로 향했습니다. 그때마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마음 쓰였지만, 엄마는 하연이가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하연이가 쓴 감정일기입니다.
* 초등학교 3학년 하연이의 감정일기
학교에 가는 게 싫었다. 선생님도 우리 선생님이 아니고 지혜랑 같은 반도 아니다. 그런데 엄마가 계속 가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다. 학교 앞에서 엄마랑 헤어지고 교실로 가는데 엄마가 아직 날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뒤를 돌아봤다. 엄마가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또 뒤를 돌아봤다. 엄마는 거기서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새 학기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하연이처럼 학교에 가는 게 힘든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연이는 새로운 교실에 들어가는 게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순간 엄마를 보고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엄마는 언제든 그 자리에 있다’라는 것을 느끼고 다시 발걸음을 떼어 교실로 향했습니다. 엄마는 하연이에게 안전기지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역할은 대부분 부모와 가족이 하게 되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가족이 건강한 안전기지를 제공할 수 없다고 해도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 아니라도, 발달 과정의 민감한 시기를 지났어도 안전기지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찾을 수도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물건,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에서도 안전기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펜과 종이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는 감정일기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안전기지가 되어줍니다. 내 마음의 안전기지가 있으면 나의 감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마음이 위로받을 쉼터 같은 곳이 있다는 편안함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느끼는 안정감과 비슷합니다. 산행 중에 대피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 안락한 다락방 같은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언제든 그곳으로 돌아가 쉬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위해 안전한 공간을 미리 찾아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많은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해서 마음 가는 대로 써보세요. 이렇게 일상의 안전기지는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고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 감정일기 쓰기 tip
•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 장소, 상황에 대해서 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