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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28. 2023

달리기가 취미입니다만......

나이 마흔이 넘으면 인간관계에서 어떤 책임감을 갖게 된다. 내가 맺는 관계가 곧 나의 생활반경이자 취향을 나타내기 쉽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낳고 맺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과 취하고 싶은 취향에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삼십 대 아줌마 무리에서 다시 십 대의 소심한 나로 돌아가 살았다.


십 대의 나는 왜소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동네에서 같은 초등학교 다니던 친구의 멀찌감치 뒤꽁무니만 봐도 길을 돌아가거나 인사할 말을 수십 번 되뇌었다. 거의 매일 보는 친구였는데도, 그 남자애에게 인사하기가 정말 겁이 났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가족 간의 모임이 잦았는데, 10남매의 아버지 쪽 친지형제분 들과 8남매의 어머니 쪽 친지분들을 만나 뵐 때는 가뜩이나 작은 가슴에 내 심장이 밖으로 뛰어나올 것처럼 떨곤 했었다.


지금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 아주 많은 비슷하다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아버지는 호방함 그 자체인 분이었다. 주목받는 걸 즐기고, 타인에 대한 모욕과 개그줄타기로 좌중을 단박에 웃게 만들 수 있는 '연예인'같은 분이었다. 또 그 당시 누구의 눈에도 쉽게 뛸 만큼 키는  180cm에  아주 커다란 목소리를 갖고 계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내 소심함이 너무나 싫으셨던 것 같다. 어떻게든 고쳐보겠노라고 자꾸만 발표를 시키고, 어디든 데려가 인사를 먼저 하게끔 하는 극단적 처방을 내리셨다.


소심한 성격이 쉽사리 고쳐질 리 없지만 그럭저럭 학창 시절과 사회생활을 거치며 내 습성은 '외향인'이 되는듯해 보였다. 사람들은 내가 큰 소리로 누군가를 호령하는 지휘자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반대편이 더 편한 사람이다. 억지로 내 성격을 개선한 뒤 나는 되려 의뭉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진실의 목소리를 품지만 겉으로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한 대사를 구현하는 사람의 모습을 갖게 된 거다.


얼마 전 남편 측 친척 결혼식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6남매 중 첫째인 시아버지의 막내여동생이 가장 아끼는 둘째 아들이 혼사를 치르게 된 거다.코로나 시기에 한 번을 못 본 친척들과 3년 만에 조우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결혼식에 임박하여 살짝 몸무게 관리에 들어가고(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살을 빼고 싶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만) 당일 입을 원피스, 구두도 미리 준비해 둔 채날을 기다렸다. 메이크업과 머리도 공들여하고 시간 늦지 않게 남편을 재촉하는 계획성도 보였다. 당일날 일찍 가서 예상과 다른 주목을 받게 되리라곤 꿈에도 모른 채.


매일 같이 뛰는 요새, 특히 여름을 맞이한 지금은 볕을 아무리 피할래도 방법이 없다. 눈가와 팔뚝의 기미는 이미 깊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팔과 다리도 건장하게 그을러서 나는 참 내가 마음에 들던 차다. 까매질수록 내 시간이 익어간다 여겼다. 친척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는 입법이라도 추진해야 할까? 시댁 식구들은 하나같이 '내 얼굴이 까맣다'(너무 까매서 다문화출신이냐고 묻기도 했다. 다문화 여성들과 나 두 대상을 모두 까는 신공... 놀랍다) '바깥 운동을 해서 타면 피부암에 걸린다.'(나도 안다. 그래서 선크림 바르고 토시하고 있잖아)'나이에 걸맞은 운동을 해야 한다'(70세 90세의 어른들도 달리기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등의 훈수를 깨알같이 늘어놓았다.

그들 앞에서 내가 러닝을 얼마나 좋아하고, 아침에 얼마나 뛰는지 고백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다 얻은 훈장 같은 피부 그을림과 기미를 자랑스레 이야기하지 못했다. 애당초 그들이 취미에 진심인 사람의 마음을 애써 설명할 관계이던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있어 우연히 시선이나 교환하면 몰라도 오만가지 이유로 운동을 못하는 사람은 운동광등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힘든데. 나이 들어 과격한 운동은 수명 단축인데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냥 조언을 위한 조언, 설명을 위한 설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내 친구 아닌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질린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을 최근 하프를 달린 기록에 얹은 '싱글렛'(어깨가 다 드러나는 민소매 운동복) 사진을 올렸다. 그들에게 보란 듯이. 햇살 아래서 뛰고 있고요. 이번 여름 동남아쪽 말고 흑인에 가깝게 그을릴참입니다. 저는 러너입니다. 이번달에는 목표한 200km도 달성했고, 앞으로도 계속 취미가 달리기인 사람입니다.를 보여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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