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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27. 2023

부캐 '샐리'로 살아가기

강사, 엄마, 독서가가 현명하게 펀런 라이프를 즐기는 방법 

"샐리님 인스타 태그 달았어요. "

"샐리님, 다음 정기런에서 뵈어요. 오늘 경복궁 정기런 정말 좋았어요."

"샐리. 오늘 낭독은 몇 시죠? 있다 Where'd go Bernadette? 같이 읽나요?"


나는 '샐리'다. 코미디언최양락이 꺾는 목소리로 뽑아내는 만화주제곡의 '샐리'처럼 나를 부르면 된다. 요술 공주는 내 장래희망이기도 하니까. 달리기 크루모임에서는 대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부르곤 하는데, 리더가 이름을 묻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 영어이름 대신 사용하던 샐리를 냉큼 대답했다. 원서 읽기와 바디프로필 찍기 온라인 모임에 들어가면서 쓰기 시작한 이름이니 어느새 3년을 어디에선가 꾸준히 '샐리'로 불리고 있다. 


내 이름 샐리는 '샐쭉하게 살리'의 줄임말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며 뭔가 쎈 기운을 불어 당길 수 있는 이름을 원해서 지은 가명이다. 자신의 이름을 짓는 행위는 내가 갖고 싶은 정체성을 나타낸 것일 텐데 나는 '샐리'라고 불리며 뭔가 세고, 날쌘 그런 이미지를 원했다. 그런 이름에 걸맞게 자기 관리를 잘하고, 그걸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사는지 하루를 돌아보자. 혜원 말고 샐리는 어떤 하루를 사는가? 


샐리로 주로 생활하는 시간은 하루의 평균 3 ~4 시간 정도인듯하다. 러닝 크루에 가입하고 일주일에 1,2회의 정기 런에 참여한다. 나이가 30대 초중반이 주를 이루는 '아그레아블 A 러너스'는 대략 6주에 6코스를 월 목 금 저녁시간에 달린다. 90~ 100여 명이 대다수고, 남녀 성비는 비슷하다. 즉 이 크루에서 나는 고령자에 해당한다. 가끔 단톡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검색해보기도 하고, 또 정모 때 블루투스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찾아들어야 할 정도의 나이차가 있다. 떼창처럼 부르는 K팝과 안무를 다른 크루들이 맞춰서 할 때 생경하게 구경한다. 셀카를 스르럼 없이 예쁜 얼굴로 찍을 때도 거리감을 느낀다. 가끔 나와의 나이차보다 우리 아이들과의 차이가 더 적어, 결국 애들 이해하듯 그들을 바라볼 때도 있다. 아주 가아끔. 아니 조금 많이. 


하지만 그들과 어울리는 샐리는 한 달 200km 누적 거리를 달리려 노력하고, 정모 때 달리기에 적합한 복장과 러닝화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이며, 기록향상을 위해 근력운동을 시행하는 사람이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들 키우는데 자유로워 보이는 그녀는 가끔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방긋 웃는다. 220개월 딸과 186개월 된 아들을 가졌다고 말하며 집 걱정 없이 잘 달린다. 샐리는 아이들을 일부러 월령으로 이야기해서 자신의 나이를 파악하는데 애먹게 한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야 고사미 마미라고 수줍게 말한다. 6 0 0  (육공공 : 1km를 6분이 완주하는 페이스)으로 달리는데 530(오삼공)으로 달릴 수도 있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샐리와 함꼐 있는 그녀들을 보라..앳되다

원서모임에서의 샐리는 어떤 사람인가? 샐리는 원서보다는 한글이 더 편한 사람이다. 다독하는 편인데,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그녀는 집 곳곳에 읽다 둔 책이 놓여있다고 했다. 화장실, 침실, 일터인 거실과 PC 앞에서 읽는 책들이 다르다고 한다. 한 달 평균 3권 이상의 원서를 읽기도 한다. 그중 2권 정도(1권은 청소년 소설)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참여를 독려한다. 낭독, 필사, 단어 습득에 관심을 꾸준히 갖고 있고 좋은 한글번역책을 보면 원서로 꼭 읽고 싶어 한다. 


원서 읽기 모임방에서 그녀는 주로 좋은 음악을 권하고 사회 시사적 이야기를 해준다. 독서토론 강사라는 직업을 가져서인가 책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현재 관심사에 연결된 책을 추천해 주기를 좋아한다. 영어를 공부하기보다는 원서를 읽는 재미를 스스로 찾아 하는 사람이다. 책을 좋아하는데 번역이 답답해 원서를 찾아 있는 고충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대중소설보다 고전을 조금 더 좋아한다. 가끔 영어로 책 읽는 속도가 더디면 한글 책으로 성큼성큼 읽고 또 다음 책을 추천하는 책에 관한 한 도통한 사람 같아 보인다. 


샐리의 일상에는 마흔 넘도록 내가 지켜왔던 잔소리쟁이엄마, 류씨네 참한 둘째 며느리, 조씨네 착한 큰딸이 없다. 운동력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관리로 스스로 생활을 계획하는 사람과 다독가로 살기 위해 집중력을 기르는 모습을 갖기를 추구한다. 샐리로 살려면 말이다. 샐리로 부캐를 가동하려면 혜원이랑도 잘 지내야 한다. 아이들과 남편이 무탈해야 하고 (이들 중 누가 아프거나 무슨 일에 연루되면 내 운동 계획은 뒷전이기 십상이다. 코로나 시기, 남편의 수술 시기에 겪었던 일례가 이를 증명한다) 시어른들과 친정식구들 또한 안전해야 한다. 내 일상이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나의 부캐활동은 더욱 왕성할 수 있다. 부캐로만 살면 될게 아닌가 쉽게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많은 파괴를 해야만 했다. 내가 그간 맺었던 인간관계와 이루고 있었던 생활을 모두 걸 만큼 내 부캐를 키우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그저 잘 지내고 또 건강하게 생활하는 일환으로 내게 다른 자아가 필요했던 거다. 


아이들은 내가 새벽에 나가 하프를 뛰고 들어오는 모습이 생경하고 러닝크루모임에서는 아이들 밥 챙겨야 한다고 뒤풀이에서 도망치듯 달려 나오는 모양새가 새로워 보일 거다. 혜원과 샐리가 뒤섞이며 공존하고 있다. 혜원은 샐리를, 샐리는 혜원을 응원한다. 각각 다른 자아면서도 각기 다르게 맺은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두 가지 라이프에서 '재미'를 추구한다.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도, 열심히 노오력해서 살지만은 말자가 최근의 모토다. 성실히 뛰고 즐겁게 일하며 아쉽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혜원과 샐리는 오늘도 달린다. 함께지만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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