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 지음, 권상미 옮김, 문학동네>
입시생 자녀를 둔 덕분에 시댁과 친정 행사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가끔은 외로웠고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3년동안 두아이의 입시를 치르면서 자연스레 제외된 가족 행사를 오랜만에 접하니 가족들이 너무나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전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일일이 나열하고 또 나를 위한 자리를 빠뜨리지 않고 지켜주는 그런 사람들 덕에 내가 안전했구나를 느끼게도 했다. 시댁 하루, 친정 하루면 족할 명절이 각 집에 두 밤씩 네 밤을 지내고 나니, 내 마음은 그간 입었던 하지만 내 집에 가져가서 풀어야 하는 빨래처럼 구깃해졌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오랜 동네 친구다. 가족관계사를 몇년째 같이 듣고 이야기 해주어 내가 가진 가족에 대한 인상의 조각들을 쥐고 있는 사람, 아마 내가 읽은 소설중 가장 유사한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올리브 키터리지'에 가까운 그녀에게 어서 긴급 공감을 수혈해야 얹힌듯 답답한 가슴이 내려앉을 수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연작 소설 중 첫번째 소설집은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올리브는 타인과는 다른 독특한 방법으로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는 퉁명스럽지만 매혹적인 여자다. HBO는 동명의 드라마를 4부작으로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캐스팅해 현실감 있게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퓰리처 상을 받은 소설은 다분히 '미국적'인 배경에서, 미국인 여성의 일생중 중년부터 노년을 그리는데 독자들은 이 언니의 모습에서 자신, 혹은 자기가 알아왔던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1956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해안과 숲을 벗 삼아 자랐다. 이때부터 작가는 문학을 꿈꾸는 한 소녀로 자라난다. 훗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일 년동안 그녀는 낮에는 일하며 밤에는 소설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전해진다. 다시 돌아온 미국에서 작품을 투고하지만 반복된 거절로 법률회사에서 근무하는 등의 생계와 꿈의 거리를 느끼던 중 단편 소설이 발표되고, 1998년 첫 장편 『에이미와 이사벨』 2008년 『올리브 키터리지』로 드디어 전업 소설가가 되었다.
퓰리처상은 주로 취재사진이나 언론인에게 큰 명예가 되는 상인데 문학분야에서는 미국 소설, 즉 미국인이 썼으며 그 나라 정서를 제대로 반영된 경우로 한정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소설이 퓰리쳐 상을 받은 이유는 다분히 미국언니의 상황적 서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소설집은 총 13개 단편의 연작모음집이다.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에 대해 모두 아는 처지다. 작중 인물 '올리브'를 중심으로 그녀의 남편, 이웃, 아들과 그의 결혼식에 온 며느리 가족들 이야기까지 모두 거구의 주인공이 직접 겪거나 주변인으로 등장하며 사건을 바라보는데 주력하고 있다.
첫 번째 소설에서는 올리브의 남편‘헨리’가 주인공이고, 두 번째 소설에서는 올리브가 가르쳤던 학생이(올리브는 선생님이다.) 세 번째 소설에서는 올리브가 자주 가는 바의 피아노 연주자가 주인공이다. 네 번째 단편에 이르면, 드디어 올리브의 목소리가 시작된다. 이처럼 이 소설집은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 연작 소설이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대로 올리브는 네 번째 소설에서야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물들은 대개 평범하게 자신의 특별하지 않은 인생을 꿋꿋히 이어간다.작가의 시선이 가 닿는 곳은 평온해 보이는 그 삶의 이면이다. 삶의 치부들, 매끈매끈하지만 그 속에 울퉁불퉁해서 거슬리는 지점이 있고 그때문에 삶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외롭지만 타인에게 조금씩 들키듯 꺼내어질 때 공감하며 다시 살기 위한 계기가 되는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그린다. . 누군가는 배신하고, 누군가는 사랑에 실패하고,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마저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이 들어 결국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홀로 남겨져도, 그 상실감과 쓸쓸함과 적막함 사이로 새로운 사랑이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퓰리처 상을 받았지만 등장인물과 배경만 바꾼다면 한국현대소설상을 받을 정도로 우리 정서에 어긋나지 않는다. 미국언니의 이야기인데 내 뒷통수가 따갑고 눈시울이 벌게지는 일들을 겪어내며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또 작가의 세밀한 묘사와 삶에 대한 농밀한 관찰은 독자의 눈을 잠시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이게 바로 소설 읽는 맛 아니겠는가. 우울하지만 유쾌하고, 슬프지만 다시웃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인생이 만나는 도착점들을 그리고 있다.
올리브와 비슷한 나이로 나이들어가며 소설은 점차 내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내게 사랑이라는게 유효할까 의심스러울 때,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나를 더이상 이해받지 못해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꺼내 읽기 좋은 책이다. 먼저 살아본 언니의 말들이 내 뒤에 자신의 관계들이 고민스러운 동네 친구에게 다시 꺼내주기 좋겠다 싶어 내 마음속에 저장해둔다. 토닥토닥 내 마음을 달래어 본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걸,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걸. (p.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