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고 통렬한 20세기 청춘소설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by 달리는 작가

금혼. 아버지는 올해로 어머니와 결혼한 지 50주년이 되었다 했다. 어머니는 그 세월 그렇게 꼴통같이 구는 사람을 살린 건 다 당신 덕이었노라 했고, 아버지는 그저 허허 웃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호방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했을 때는 비겁했으므로 우리 삼 남매와 눈물 많은 어머니는 그의 알코올 농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삶을 살았다. 내년에면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그래도 살 수 있었다며 다시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입을 꼭 다문채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오십 년이나 살았는데 안 좋은 점이 많았어도 그래도 혼자는 못살았겠다며 자신의 오십 년 결혼생활을 회고했다. 겨우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청해 듣고야 나는 우리 어머니가 일종의 휴머니즘에서 아버지를 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사촌오빠의 소개로 만난 덩치 큰 남자가 술만 먹으면 배시시 웃더란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목소리도 너무 크고 무서워지길래 안 만나겠노라 하고 시골집에 은신했는데 남자가 수소문 끝에 시골 흙담벼락에서 '자신은 죽겠다'라고 소리 질러서 진짜 죽을까 두려워 결혼했다고 50년 전 일을 짧게 말했다.


겁이 많은 남자가 죽을까 봐 곁을 지키는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들의 사이가 부침이 있을 때마다 흔들렸던 아이 셋은 지금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중년의 남자, 여자 그리고 비혼주의 여자 하나로 자랐다.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전후 일본의 지식인 사회의 흔들리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의 전 세대의 이야기다. 작품은 26살의 젊은 나이에 등단한 소설가 시바타 쇼를 단숨에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로 부상시켰고, 1960년, 70년대 일본 청춘들의 베스트셀러로 '일본현대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나(후미오)’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H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이 낯익었던 세쓰코를 통해 그 책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임이 밝혀진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결혼을 앞둔 두 남녀는 각각 '사노'의 삶을 추적하고 그가 대기업에 취직해 평범하게 살다 자살했으며 유서처럼 남긴 편지를 입수한다. 그 편지를 읽은 후미오와 세쓰코는 자신들이 서로에게 묻지 않았으나 품고 있었던 질문을 맞이한다.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청춘은 당시에 그 흔들림이 얼마나 아름답지 미처 알지도 못한 채 괴로워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을 의미한다. 도종환의 시 <흔들리는 꽃>에서 일컫듯 꽃은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우고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워"낸다. 부침과 고통, 외로움과 눈물, 혼란 앞에서의 갈등이 청춘의 본령 아니던가. 다만 그 당시에는 너무 미숙해서 또는 너무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 앞의 작은 상처만 보인다. 어릴 때의 미숙함이 다 자라지 못해 그렇게 지금에만 몰두하며 아프다.


이 소설은 그래서 어떤 연령의 독자에게나 호소력이 깊다. 지금 젊고 사랑에 불타오르는 청춘들에게는 흔들리며 뱉는 주인공들의 말이 자신을 대변할 것이며, 연령이 지긋해 자신의 청춘시절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 당시의 흔들림 또한 젊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라 추억의 서랍장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혼란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것의 치열한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뜨겁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문학비평가 신형철의 말대로 '세계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라도 "인생작품"은 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품는 세계가 정한 가치관 앞에서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게 만드는 힘을 가졌으니까.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p.27)


사노의 유서와 세쓰코의 이별 인사가 '편지'인 건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이미 결정되고 되돌릴 수 없는 독백은 그대로 내 뜻이 전해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그들은 대화로 자신이 이해받기를 우너 하지 않는다. 장문의 편지로 내가 죽은 뒤 혹은 떠나고 난 후의 나를 이해해 보던가 식의 전별... 어떤 식이든 이별의 인사는 잔인하다. 해명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봐 로 전해지는 편지 앞에서 후미오는 반복적으로 그들의 말을 다시 읽고 재해석하고 전해지지 않을 자신의 답변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소설은 흔들리는 꽃과 같은 청춘의 이야기가 된다. 청춘들을 대표해 고뇌에 찬 삶에 대한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에 머리가 처박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상처 입는 일’을 계속하게 만드니까.


소설은 독자들에게 진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할까?” “산다는 건 대체 뭘까?” 진부하지만 인생을 관통하는 경험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 앞에서 독자와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답한다. 어떤 자는 세상을 등지고, 어떤 이는 세상을 적당히 받아들였으며, 또 어떤 이는 거기에서 탈출한다. 대답이 꼭 정해지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사노의 편지처럼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언젠가 내일이 오는 걸 바라지 않을 정도로 지칠게 분명하다.” (p.176) 꽃을 피워내는 혼신의 힘을 내는 청춘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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