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은 성인 ADHD도 고친다

by 달리는 작가

멀티태스킹.

우리 세대들은 한 번에 서너 가지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능력을 높이 쳐줬다. 그래서 음악 들으며 공부, 혹은 과업을 수행하고 밥 먹으며 전화하고 손가락으로는 휴대폰 새 로고 치기로 티켓팅 전에 참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에 바빴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딴짓하고도 선생님의 판서를 깔끔히 옮기는 기술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 마침내게 생긴 늘 접속 세상 스마트폰은 내게도 영원히 전원오프를 시키지 않는 막강한 도구가 되었다. 스마트폰을 갖게 된 후 나는 늘 접속해 있으나 하나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잘 기능했다. 번듯한 성과는 내었지만 뚜렷하게 빛나는 결과는 못 내는 만년 3등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골전도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의 흐름을 맡기고 내일 먹을 과일을 구매하려 온라인쇼핑몰을 서너 개 오가고 있다. 바쁜 현대인이니 다양한 역을 수행한다 쳐도 엄마 하다 선생님, 그리고 글 쓰는 사람으로까지 집중과 대혼란 속에서 나는 매일매일 하루에도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것도 동시 다발적으로 해낸다. 한분야일을 처리하던 도중에도 다른 영역을 늘 기웃거리며 걱정하는 사람이다. 이래저래 집안일을 하며 내 공부와 아이들 뒷바라지도 놓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잘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가끔 그것의 질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느라 한 가지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내겐 전원오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항상 온인 상태로 살아가다가는 번아웃이 되었을 거다. 실지로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열이 39도까지 오르는 급성 인후염을 겪거나, 재빠르게 뛰어가던 차에 넘어져서 무릎에 크게 상처를 입는 경우에만 멈추는 사람이다. 늘 엑셀레이터를 밟는 사람, 버텨! 하는 마음으로 직진을 하는 사람이 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몸의 제어장치가 알아서 휴식을 취하게 만들 상태까지 미련하게 나를 견인해 나간다. 아플 때나 쉬는 사람이라는 걸 몸이 알아차린 게다.


늘 접속해 있으며, 누군가에게 카톡이나 전화 답변을 재빨리 하는 사람이 오프상태가 될 때는 바로 전화를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운동에 흠뻑 빠져 있는 시간이다. 그때만은 나는 고요하게 길과 그 속의 나를 발견하며 누린다. 그냥 명상도 해봤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 얼마나 흘렀을까? 졸린데. 명상 끝나면 재빠르게 움직여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다만 달릴 때에는 달리는 행위에만 머무를 수 있었다. 지금 페이스와 내 심박, 그리고 주행 도로의 상태와 내가 갈 길의 방향등만 썼다. 정확히 말하면 안전하기 위해서 온 신경을 다 써야 했기에 나는 오로지 나만을 걱정할 시간을 강제로 갖는 셈이다.


또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는 당연히 못 달린다. 그 정도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그럴 바엔 걷는 게 낫다고 여기는 편이어서 나는 달리는 동안 내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 오로지 언제 끝날까? 혹은 오늘 좋았는데 좀 더 달려도 되는지의 여부만을 생각하는 거다. 몇 년간 해도 이 활동은 물리지 않는다. 날마다 다른 풍경을 보고 철마다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고로 나는 달리는 동안 만은 나의 주의 산만한 모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움직일 때 나는 비로소 멈춘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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