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추억을 만든다.

이제는 만날 수도 얘기할 수도 없는 친구에게 이 사무치는 마음을 전하며.

by 플린

2017년 10월 13일, 필리핀 마닐라.

단 하나의 목적으로 필리핀 마닐라로 떠났다. 내돈 내산으로 여행이 아닌걸로 해외를 가는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날은 내 생애 덕질로 가장 큰 행보를 보인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날은 마닐라 공항을 내리는 순간부터 모든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기억은 내 블로그에 생생하게 적어두었던.

https://blog.naver.com/ms97737977/221117494432


덕질은 친구와 추억을 만든다.

그 해 '프로듀스101'에서 난 박지훈에게 내 모든 마음을 빼앗겼다. 어쩜 세상에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있지? 그 당시 프로듀스101을 보는 주변 친구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멤버가 달랐다. 아쉽게도 내 지인들 중에 박지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워너원이라는 그룹으로써 같이 덕질을 하지만 정확히 박지훈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희소성 멤버도 아닌, 2위를 한 멤버임에도....)

그러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하는 팬미팅도 혼자가게 됐고, 거기서 500명만 선정해서 하이터치 (멤버들과 인사하며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나가는 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거기에 내가 당첨이 되었다. 이건 그 해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필 출발 전날 밤에 발표가 나는 바람에 잠을 거의 못자고 출발했다.

그렇게 도착한 필리핀 마닐라 공연장과 그 옆에 바로 연결되어 있는 호텔. 낮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밤에 팬미팅을 보고 다음날 저녁 비행기로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그 1박2일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과 같았다. 나의 현생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이였다.


모든 일정 후 대망의 '하이터치' 시간. 500명은 3열 종대로 서서 순차적으로 입장했다가 반대편 문으로 퇴장하는 절차였다. 기다리는 시간도 좀 길었다. 그 긴 시간동안 내 뒤에 있던 한 팬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친구도 때마침 박지훈팬이었다. 이런 인연이 있나 싶었다. 둘이서 박지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금새 마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한국에서 꼭 다시 보자하고 하이터치 이후 각자의 일정을 위해 헤어졌지만 우린 곧 한국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이렇게 드디어 나에게도 박지훈을 함께 덕질할 친구가 생겼다.


함께여서 더 즐거웠던 시간.

2017년 10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우리는 꽤 자주 만났다.

그저 멋진 모습을 보는것만 좋아했던 나와 달리, 혜란은 박지훈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이었다. 이 친구에게는 지훈이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 아프고 힘든 시간에 티비에 나타난 박지훈. 지훈이의 프로그램들과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 시간을 잘 버텨냈던 친구. 그래서 이 친구는 박지훈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알뜰히 챙겨서 선물을 보냈고, 그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박지훈은 그 친구가 보낸 뽀글이 아우터를 예쁘게 입고 팬들 앞에 섰다. 나와 그 친구만 알아봤던 그 아우터. 그 친구가 보낸것일 수 밖에 없는 매듭 그대로였다. 너무 신기했다. '정말 선물이 보내지는구나!'

그 이후 나와 그 친구는 '박지훈 뒷바라지단' 이라는 팬소모임을 만들고 돈과 마음을 모아, 보내고 싶은 선물들을 고르고 편지를 써서 커다란 박스에 담아 보냈다. '#박지훈 #뒷바라지단' 이 새겨진 테이프도 주문해서 박스를 그 테이프로 둘러 꼼꼼히 포장했다. 태진아와 같은 소속사였던 워너원은 태진아가 운영하는 카페에 자주 나타났었다. 그래서 우리도 거기서 만나 박스를 채워갈 물품들을 모으고 담았다.

그러던 중 그 친구가 집을 이사했다. 마음이 따뜻했던 그 친구는 나를 집에 초대해주었고 같이 밥도 먹고 선물도 고르면서 서로의 얘기를 더 깊이 나누었다. 역시나 그 친구 집에는 본인의 추억만큼이나 박지훈의 추억과 자료들이 가득했다. 나도 나의 모든 시간을 박지훈에게 쏟아봤지만, 그 친구의 마음을 난 따라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지훈이 잘되고 성공하고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기에 더없이 즐거운 덕질을 할 수 있었다.

한번은 그 친구가 우리집에도 놀러왔다. 겨울이었다. 둘이서 맛난것도 먹다가 우리집 앞에 오뎅바가 있어서 거기에 들렀는데, 테이블 한 가운데 오뎅꼬치가 가득하고 그 테두리에 사람들이 앉는 그런 정통 오뎅바였다. 둘다 술도 좋아해서 이미 밥먹으며 한차례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들어간 곳. 우리는 거기서도 기분좋게 술을 마시다 옆에 테이블 사람들과도 희희낙낙 웃으며 새벽까지 너무 행복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원룸이라 편안하지는 않았을 우리집에서 같이 잠도 자고 아침으로 해장까지 해서 집으로 돌아간 친구. 그 날이 우리가 만난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후 난 퇴사를 하고 약 7개월간 유럽에 있다 왔고, 그 사이 그 친구는 부산에 가서 본인의 삶을 즐기며 지훈이의 덕질을 놓지 않았다.

그저 미안한 시간.

늘 다가오는건 그 친구였다. 난 표현도 서툴고, 사람에 대해 다가가는 방법도 서툴러서 마음은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생각나도 그걸 쉽사리 행동에 옮기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인스타그램 친구였는데 서로의 포스트에 좋아요를 남기고 가끔씩 댓글을 남기면서 지내던 시간.

그 사이 그 친구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우리집 주소를 알던 그 친구는 청첩장을 우편으로 보내줬다. 대부분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손수 편지를 담아 청접장을 우편으로 보내줬다. 하지만 결혼식장이 부산이어서 차마 가지는 못했던 나. (마음이 너무 무거워 청첩장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 이후에 그 친구는 임신을 했고 딸을 출산했다. 그게 2021년 초였다. 그간 그 친구의 마음고생과 삶을 들었던 나로써는 이 모든게 너무나 큰 축복같았다. 그 친구의 임신 소식에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또 바쁘게 지내는 일상에서 출산선물도 보내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도 새로운 직장에 취업했고, 다시 일상을 살아내면서 내 일상에 박지훈의 존재가 많이 희미해졌다. 우린 그저 인스타 친구사이같았다. 아니, 내가 그 친구를 그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었다. 예쁜 딸을 키우면서 올리는 사진들에 좋아요를 누르지만 딱히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 사이 박지훈은 인스타를 시작했다. 그게 2022년 4월이었다. 하지만 슬슬 테니스에 빠졌던 난 박지훈의 활동을 따라가지 못했다. 인스타를 시작한지도 몰랐는데, 그 친구는 그때부터 지훈이를 follow하면서 여전히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친구와 나 사이의 시간은 일, 월이 아닌 한해, 두해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if kakao 발표 영상에 남긴 그 친구의 댓글. "우리언니,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멋져요!!!" 그게 2025년 9월말이었다. 그 영상을 내가 직접 올리긴 했지만 거기에 남겨진 댓글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생겨 댓글 어디에도 답글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좋아요를 표시한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이상하게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 친구에게 답글을 남기거나 DM을 보내지 못했음에.. 모두에게 공평하게 마음을 나눈다는 핑계로 아무런 응답을 하지 못했음에...

그러던 11월 어느날. 친구와 밥을 먹고 있던 중에 문자 한통이 날라왔다.

박혜란님께서 2025년 11월 27일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이 친구의 남편이 친구의 핸드폰 번호로 보낸 문자였다. 한번에 글이 읽히지 않았다. 이 단 한 문장이 너무나 길고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지금도 저 글이 와닿지 않는다. 예쁜 딸과 너무 좋은 남편과 잘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 사이 그 친구는 암투병중이었던 것. 내가 좀 더 살폈다면 이렇게 무심하게 보내진 않았을텐데... 이기적이게도, 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함에 마음이 먹먹하고 미안했다. 후회되는 일만 생각났다. 그럼에도 천안에 안치된 그 친구의 장례식장을 가보지 못했다. 가자면 갈 수 있었다. 그치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미안해서... 그 앞에 내가 서면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아서 이번에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조문을 가지 않고 조의금만 보냈다.


나의 스타 박지훈.

어제 <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 내가 2년간 나의 모든 시간과 마음을 쏟아 아낌없이 응원했던 사람 박지훈. 그 간 약한영웅이나 다른 드라마로도 활약이 컸고, 청룡영화제 남자 신인상도 받으면서 승승장구 하고 있기에 너무 뿌듯했는데 이번 영화는 특히나 내가 바라던 나의 배우, 나의 연예인이 되어 멋지게 나타난 듯했다. 영화관에서 박지훈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왈칵 눈물이 났다. 박지훈을 이렇게 영화관 스크린에서 본다는 벅차오름과 뭉클함과 함께 그 친구가 떠올랐다. 박지훈의 모습 하나하나, 연기 하나하나에 끝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다행히 슬픈 영화여서 내가 우는게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

같이 본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영화관을 나오면서 말했다. '영화 초반부터 계속 울더만!' 내가 박지훈을 얼마나 덕질했는지, 그리고 거기서 이 친구를 어떻게 만나고 지냈는지를 다 아는 이친구에게, 내가 눈물이 난 이유를 말하면서 다시 한번 울컥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친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집에 와서 박지훈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가봤다. 이 친구는 박지훈의 포스트에 2025년 9월까지도 끊이없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고 있었다. 9월에 건강을 많이 회복하고 퇴원한듯했는데, 2개월 후에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시간이다. 그 친구는 늘 박지훈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스타'


혜란아, 난 사실 너가 너무 좋았어. 너무 예쁘고 착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 이렇게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넌 정말 멋있는 친구야. 그럼에도 잘 다가가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해. 너가 응원하고 마음을 준 박지훈은 너가 예상했던 것처럼 이제 대 우주스타야. 우리에겐 이미 그랬지만,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지. 어쩌면 너의 진실된 응원과 마음이 닿은게 아닐까.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나도 박지훈을 열심히 응원하고 꾸준히 마음을 나눠줄게. 너의 몫을 다하진 못하겠지만 그 마음 따라가볼게.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켜보길 바라. 정말 고마웠어. 내 친구로 나타나줘서.


그 친구를 처음 본지 8년이 지났다. 비록 각자의 삶을 사느라 잘 보지 못했고 연락하지 못했지만 박지훈을 보면 늘 그친구를 떠올렸다. 그렇게 우린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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