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세상의 모든 하찮은 이에게 보내는 초대: 일로오션
지난 한 주 내내, 강릉에서 반말로 대화를 하며 친해지는 과정에서 존대어로 문을 연 관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세계가 열렸습니다. 존대어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고작 반말을 썼다고 열리다니. 실은 존댓말의 잘못이 아닌 발화자인 내 상상력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 속에서만 내 세계를 쌓아온 잘못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좋았던 일주일에 대한 단상을 적어 보려 했는데 당신들의 얼굴에서 빛났던 것들을 담기에, 이번엔 아이러니하게도 반말로 쓰는 것의 한계를 느낍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없을 존대의 말들로 당신들에게 편지를 부칩니다.
일하러 바다로 오라던 '일로오션'은 실은, ‘사람만나러오션’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단 생각을 합니다. 일상에서면 굳이 닿지 않아도 될, 닿지도 않을 여러분을 만났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역시 가장 깊게 만나고 온 사람은, 오디라는 이름의 나였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나를 가장 많이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을 알게 된 것 훨씬 이상으로 저는 저를 더 많이 발견하는 여지없이 이기적인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은 죽음을 생각하며, 어느 날은 일을 생각하며, 또 어느 날은 사랑하는 것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꺼내보여 당신들에게 내어 놓으면서요. 혼자 생각했다면 그려지지 않았을 것들이 당신들의 귀가 있어 말로 내어졌습니다. 그러니, 이번의 자아 탐색은 오롯이 당신들의 관대함과 양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두고 여러 번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사실은 제게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정말 다 하찮다.’
세상의 하찮은 것들을 떠올립니다. 넘실대는 들판 속 여물어 익은 벼 한 톨, 송정으로 향하는 길 무수히 떨어져 있던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 나비가 될 날을 준비하고 있는 애벌레, 셀 수도 없는 무수한 강릉 바다의 모래알 같은 것들을요. 하찮은 것들은 모여서 풍경을 만들고 공간을 빚고 시간을 만듭니다.
하찮은 것들은, 처음엔 눈에 띄지도 않다가 어느 날 눈에 확 부딪혀 안깁니다. 누구나 다 아는 화려함, 누구나 다 아는 미려함이 아닌 하찮은 것에 빠지면 답도 없습니다. 하찮은 것의 매혹은 치명적이지요. 하찮다 생각했던 과거가 무섭게 촘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그 하찮은 것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남들이 계속 하찮다 여기는 그것을 계속 들여다보거나 들춰보게 됩니다. 의미가 생깁니다. 사진을 찍는 당신들은 하찮은 것들을 재발견하는 것의 기쁨을 아실 테지요.
우리가 9월 마지막 주에 그랬던 것처럼요.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늘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론 여러 번 쓸쓸했습니다. 언어의 빈곤함을 발견하거나, 쏟아지는 내 말들 속에서 껍데기만 덜컹거린다 느끼는 때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다정으로 향하는 길이기에 감히 누군가를 ‘하찮다’고 스스럼없이 말한 ‘소정’한 제 모습에 상처를 입었다면, 제 언어에 존중이 모자랐다면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하찮음이 내게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당신만의 매력이라는 진심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계획하는 J, 계획하지 않는 P 모두에게 실은 미래란 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망망대해와 같은 것은 매 한 가지겠지요. 하찮은 우리의 삶은 얼마나 연약한가요. 동시에 서로의 하찮음을 보듬는 우리는 얼마나 강력할까요. 우리 서로의 하찮음이 서로를 보듬는 좋은 핑계가 되어 오래 동안 굵고 가는 인연의 실들을 우리 사이에 엮어두게 되길 바랍니다.
깊은 감사와, 10명의 일로 온 사람들, 7명 + a의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찬탄을 보냅니다. 부디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몸과 마음과 영혼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깊은 애정을 보내며,
오디로부터
행정안전부에서는 소멸 위기에 있는 지역의 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 청년들의 지역 이주를 최종 목적으로 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강릉은 강화, 거제, 괴산 등과 함께 올해 마을 만들기 사업 진행지로 선정된 곳 중 하나입니다. 강릉의 마을 만들기 작업을 하는 곳은 <더웨이브컴퍼니> 혹은 TWC라고도 불리는 강릉 지역의 회사로, 그들의 언어를 빌리자면 '강원 기반 로컬 콘텐츠 기획사'이고요. 더웨이브컴퍼니는 강릉 유일의 코워킹 스페이스 파도살롱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번 청년 마을 만들기 사업처럼 강릉 지역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나 정착을 고민하는 (예비) 로컬 크리에이터나 창업가, 창작자 대상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일로오션>이라는 제가 참여했고 감탄해 마지않는 프로그램은, 더웨이브컴퍼니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8주짜리 프로그램 <강릉살자> 1기의 참여자 일부가 강릉살자 졸업(?) 이후 진짜 강릉에 살면서 더웨이브컴퍼니와 함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5박 6일 동안,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서로 모른 채 모인 우리는 반모(반말 모드)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어느 정도의 연식에 대한 짐작은 있을지언정 굳이 그것을 의식하며 지내지 않았고요. 그래서 저도 인생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 상태를 나타내는,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존재를 나타내는 말 오디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서로의 닉네임을 통해 사회에서 원하는 정형화된 형태가 아닌 '나'를 소개하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다소 어색한 상태로 보낸 첫날밤이 무색하게 우리는 매일 밤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빠르게 친밀해졌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에서 할 수 없었던 얘기들을 편하게 풀어내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강릉의 솔숲과 해변, 저 멀리 수평선이 널리 펼쳐진 배경을 앞에 두고 루프탑에서 요가 비슷한 것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새벽엔 밤새 이야기하다 늦게 잠들어 제정신인 상태도 아닌데, 일출을 보겠다고 사람 없는 해변에 나란히 앉아 구름 뒤의 해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길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음식을 나누고, 술에 취한 채 누군가는 전을 부쳤고 누군가는 정신이 말짱한 상태로 그런 누군가를 재밌어하기도 했습니다.
놀기만 했냐고요? 그럴 리가요. 일로오션이니 일도 했습니다. 제겐 처음 먹는 글밥을 강릉에서 마무리 짓고 마감 후의 안도와 즐거움을 첫 경험한 곳이 일로오션이었습니다. 이 브런치에 적은 글 한 조각은 강릉 출신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연봉협상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바 자리에서 해냈습니다. 오전 10시에서 20시까지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일과 쉼이 함께 할 수 있는 각자의 시간이었거든요. 누군가는 줌으로 미팅을 하고, 노션으로 할 일을 정리하기도 했고, 소규모 온라인 행사를 해내기도 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포스트 코로나 이후 일의 미래를 감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인데, 굳이 프로그램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겠나 싶으실까요? 여기서 만난 멋진 사람들은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겠지요. 일과 쉼을 적당히 균형 잡아 두 손 가득 쥐어준 실용 굿즈도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로컬들만 알 것 같은 안주 맛집 중식당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일로오션은, 제가 참여했던 3기를 기점으로 잠깐의 휴식을 갖습니다. 정확히는 휴식이 아니라 더 성장한 형태의 일로오션을 준비하는 기간이겠지요. 1,2,3기를 진행한 경험이 지금과 어떻게 같고 다른 형태의 4기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친구를 손님으로 맞는 마음으로 과정 과정을 준비하고 대접하는 더웨이브컴퍼니와, 강릉살자 팀원들이라면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근데, 그 훌륭한 결과물에 꼭 필요한 재료가 있습니다. 일로오션에 참여하는 사람들. 이 글을 읽고 강릉에서 일하며 쉬며 새로운 이들을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하찮지만 하찮음의 소중함을 아는 당신이라는 존재. 일로오션의 완벽한 마무리는 비로소 당신이 함께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 됩니다.
일로오션의 마지막 조각이 되어보고 싶은 당신에게, 예기치 못하게 발송될 일로오션의 초대장을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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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경험한 이 기이한 강릉에서의 일과 쉼과 만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깊은 인류애를 담아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일로오션을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이 꼭 당신에게도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