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졔졔 Dec 04. 2021

돈이 나를 위하여 일하게 하라길래

남들 돈 일할 때 내 돈 안 일하는 얘기

올해 초 세운 목표 중 하나는 자산 N원 규모 달성하기였다. 내가 모은 돈이 얼마인지, 내가 쓰는 돈이 얼마인지에 대해서 자각하지 않고 30년을 넘게 살았다. 재테크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고 하던데, 나를 위해 일해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 발은 딸리는데 고용에 쓸 돈은 없는 구멍가게 사장 같은 삶을, (실제로 구멍가게 사장이기도 하였거니와) 살았다. 그랬던 내가 주식 시장에 발을 담근 것은 당신 주변에 있을 친구들의 흔한 시장 입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9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주식 시장이 떡락했고, 너나없이 개미가 되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을 때 나도 시장에 발을 담갔다. 직장 동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고 서로를 '야수의 심장' '테슬람' 등의 새로운 별명을 부르고 있었다.


문득 궁금하지만 두려워 조금만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잠사빠 (잠시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금 막 만든 말이니 독자께서는 신조어를 모른다고 속상해하지 마시오.)인 내가 그 당시 좋아했던 연예인이 소속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 사의 '개잡주'를 샀다. 진정한 잠사빠라 어떤 연예인의 어떤 회사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첫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투자 금액은 4만 원, 하루 만에 8천 원을 벌면서 20%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하루 사이에 경험했다.


'캬, 이 맛에 주식하는 거군. 그래, 이제 나도 돈이 나를 위해 일하는 삶을 살아보겠어.'


그날 나는 내가 주식에 재능이 있다고 믿어버렸고 이것이 이 시장에 입문하는 아기 껄무새의 파국 지름길이라는 것은 훗날 굳이, 굳이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리저리 파 국도 마시고 떡상과 떡락을 반복하며 떡을 주식 삼아 이 아기 껄무새는 1년 간 껄껄력이 폭풍 성장했다. 그리고... 소박하고 약소했던 데뷔 자산 대비 100,000% 이상의 겜블링 머니를 시장에 갖다 바친 안 훌륭한 껄무새가 되어 있다. (수익률이면 좋겠다. 쩝.)


2020년 초 봄에는 코인에도 발을 담갔다. 주식은 해도 코인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불장의 힘은 강력하다. 사람들 마음에 불씨를 떨구고 이내 화륵화륵 화르륵하게 만들어 버린다. 인생, 설렘과 모험의 연속이길 바라는 나 같은 낭만주의자(?)에게는 농밀한 로맨스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주식이 '오늘은 이만 집에 들어가자'며 웃으며 집에 들여보내 줄 때, 코인은 '집에 가지 마, 베이베' '위, 아래, 위, 위, 아래'를 부르며 밤낮으로 '나만 바라봐'주길 바란다. 이 매력 어떻게 안 빠져. 그렇게 또 겜블링 머니를 갖다 바쳤다.


그 결과 지난 3~5월은 혹독했다. 훗날 역사학자들이 대체 2021년 2분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다면 테슬라도 코인도 영 힘이 없어 나도 힘이 없던 시기라고 얘기하겠다. 그럼 3분기는 어땠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외칠 것이다.


'꿀!'


2분기에 요원해 보이던 올해 초 세운 목표 N원 모으기는 3분기 들어서 실현될 기미가 보였고 나는 속으로 웃었지. 겉으로도 아주 사람이 여유가 물씬했더랬다. 일단 사람이 긍정적이 된다. 11월에는 시장의 상황에 따라 때때로 올해 자산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 그리고 어젯밤, 그리고 오늘 아침, 지금이 오늘 아침이니까, 그래 지금 이 순간! 다시 나의 목표 자산액 N원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분명히 닿았던 적도 있는데 오늘은 그 목표액이 닿을 수 없는 고지처럼 느껴진다.


얼마 안 담근 국내 주식은 애초에 마이너스를 치고 있던 까닭에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는데 국내 주식도 쪼꼼 떨어졌다. 떡상 길만 걸을 것 같았던 해외 주식은 이틀 연속 5~6% 대가 빠지면서 10%가 빠졌다. '빠지면 더 담지~ 나는 이제 어엿한 성인 껄무새니까~' 했던 불과 12시간 전의 여유가 무색하게 새벽 내내 흘러내렸다. 아니, 그리고 무슨 연동 자산이니 너희? 어젯밤엔 코인도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젯밤은 여러 번 자다 깨다를 대차게 반복했다. 모든 것이 핸드폰 하나면 손쉽게 확인되니 새벽에 계속 해외 시장과 코인 시장을 들어갔다 나왔다. 평안히 잠자야 하는 시간에 얼굴에 블루라이트 직격탄! 차트의 캔들도 블루 라이트! ^_~ 그렇게 어젯밤에만 천만 원이 사라졌다.


돈이 나를 위하여 일하게 하라길래 고용한 내 돈들은, 원화 채굴할 때는 다 똑같은 돈이 었던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 돈 대비 좀 역량이 떨어지는가 싶다면접을 제대로 안 봐서냐? 돈이 일하라고 하는 건 알아서 일하라는 의미일 텐데, 내 돈들은 일을 잘못해서 손이 많이 간다. 일 못하는 부하 직원이 줄줄이 딸린 기분이다. 일 시켜 놓고도 계속 확인하게 되는 거, 해놓은 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하고 싶은 기분 들게 하는 거, 근데 짜르지도 못하는 거!!!!


오늘 아침은 영 상쾌하지 않다. 아, 이건 좀 오바인 것 같기도 하다. 아침이 상쾌했던 적은 별로 없지. 그래, 기분이 안 좋다. 내 돈 녀석들!!!! 일하라고 했더니 이 자식들이 나 대신 소비를 한다. 쓰지도 않은 돈이 막 없어져!!!! 그냥 일못은 봐줄 수 있는데 이건 배임, 횡령 정도다. 좀 너무 하다. 심지어 이 놈들, 어젠 짠 듯이 동시에 그러기 있냐!!!! 밤 사이 그리고 밤 낮 없는 코인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블루 라이트를 쏜다. 적자가 나쁜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재무제표에서나 그런 거고 나는 지금 적자가 고프다.


이 글을 다시 읽을 용기가 벌써 안 생긴다. 멘탈 빠개진 걸로 보이는 글이겠지. 사실 맞음. 그래도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아 충격의 도가니 한가운데서 써 내려가는 이 글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평정을 찾아야겠다. 글로 빠개진 멘탈을 토해내고 나니 빠개진 멘탈의 부스러기조차 남지 않아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코인으로만 천만 원 이상 빠졌던 2, 3Q을 버텨올 수 있도록 한 만트라가 내겐 있다. 이번에도 이 만트라를 소환해 자산 상황과 상관없이 행복 회로 열심히 돌려서 일 못하는 돈 놈들이 내 삶을 너무 속상하게 만들게 두진 않아야지. 코인은 원래 명칭이 애초에 가상화폐다.


그러니 다 같이 외쳐,

떡상하면 자산, 떡락하면 사이버 머니!


매거진의 이전글 외계 생활 39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