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선생님은 사뿐사뿐 말해서 좋아.

by 정주다

아이의 어린이집을 선택할 때 가장 크게 고민했던 부분은 아이를 얼마나 잘 돌보아주는 것이냐였다. '잘 돌본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 물으면 어느 부모든 아이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느냐가 첫 번째 일 것이다. 두 번째부터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잘 돌본다'는 것은 주양육자가 바뀌지 않고 아이를 지속해서 돌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몇 시간 정도 놀이하는 것을 빼면, 나와 남편이 주양육자였다. 그런 아이가 난생처음 낮시간 동안에 돌보아줄 새로운 양육자를 만나는 곳이 어린이집이었다. 이것이 어린이집을 보낼 때 많은 부모들의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첫째 아이는 우리 부부의 신혼집에서 태어나 근 1년을 살았다. 조비 작은 집이었어도 세 식구가 사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쭉 살 생각이었다. 작은 평수만 있는 아파트 단지이다 보니 우리처럼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첫 아이를 낳는 부부들이 많은 동네이기도 했다. 그래서 단지 안에만 어린이집이 6개나 되었다.


3월 생 아이라 한 살이 되었을 때부터 바로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9개월 정도부터 단지 내 어린이집 상담을 다녔었다. 첫 번째 상담을 했던 가정어린이집은 따뜻한 분위기였다. 원장선생님도 아이를 예뻐라 해주셨다. 하지만 시설이 많이 낙후한 느낌이었다. 두 번째 상담을 했던 국공립어린이집은 시설물은 깔끔하고 벽도 밝은 느낌이었으나, 선생님들의 얼굴에 웃음이 없었다. 원장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때가 평가인증 기간이라 교사들의 일이 조금 늘어서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에는 조금 걸리는 부분이었다. 세 번째 상담을 했던 가정어린이집은 원장님과 선생님들 모두 아이를 정말 예뻐해 주시며 반겨주셨었다. 내가 생각했던 아이를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의 모습과 많이 비슷한 곳이었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이 오후 5시였다. 어린이집에는 한 명의 아이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문을 열자마자 락스냄새가 풍겨져 왔었다. 냄새가 꽤 독해서 인상이 찌푸려졌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다.


세 군데 어린이집 상담을 마치고는 더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당시 살던 집에서 내 직장은 50분, 남편 직장은 45분 거리정도였다. 남편은 육아를 이유로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단축근무를 하며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5시 50분은 되어야 하는데...... 상담을 받았던 세 곳 모두 4시 반 정도면 대부분의 아이가 하원을 한다고 했다. 간혹 늦게 하원을 하는 아이가 있더라도 5시 반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상담했던 곳 중 가장 아이를 보내고 싶다 생각했던 곳은 오후 5시가 되기 전부터 락스를 가지고 이곳저곳 청소를 하는 듯했다. 아이를 그곳에 보낸다면, 우리 아이만 혼자 남아 독한 냄새를 맡으며 나를 기다리리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런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시간에 아이를 하원시키기 위해 시터이모님을 고용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대답은 'NO!'였다.


시터이모님을 고용하는 것은 내가 아이를 '잘 돌본다'라고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았다. 아이가 아침에 등원하여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과 놀다 하원한 후, 시터이모님과 3~4시간을 보내고 다시 엄마, 아빠를 만나는 일정을 보내야 했다. 그럼 주양육자가 하루에 총 세 번 바뀌는 상황이었다. 물론 세 번이 바뀌어도 모두가 아이를 잘 돌보아주겠지만, 아이에게 계속해서 일관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바로 내가 일하는 직장의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직장어린이집은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담임선생님이 한 반의 아이들을 돌봐준다는 게 좋았다. 또 내가 직접 등, 하원을 할 수 있으니 궁금한 것을 담임선생님께 바로 물을 수 있고, 아이의 양육과 훈육에 필요한 점을 의논하여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일관되게 제시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운 좋게 바로 다음 해에 입소가 가능하다고 했다. 직장어린이집을 가기로 정하면서 어린이집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이사도 했다.




0세 반에 입소했던 아이는 만4반세인 현재까지도 직장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있다. 덕분에 내가 가졌던 '잘 돌본다'의 기준도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첫째 아이의 반에 한 달간 유아교육과 선생님이 실습을 오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엄마 난 실습선생님이 좋아."


"새별이는 실습선생님이 왜 좋아?"


"실습선생님은 사뿐사뿐 말해서 좋아."


사뿐사뿐이라는 표현에 웃음이 터지려던 것도 잠시였다. 속으로 굉장히 뜨끔했다. 아이가 사뿐사뿐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최근에 나는 아이에게 사뿐사뿐 말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큰소리 내지 않고도 충분히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4살 이후부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향해 한 꽤 많은 말들이 명령과 협박이었다. 아들 둘의 키우는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공룡소리도 낸다는데 우리 집에는 아들이 없는데도 공룡소리가 났다.


많이 활발하고 텐션도 높은 딸아이를 키우다 보니 힘주어 말하고 목소리도 커지는 게 당연했다. 이건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계속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니, 아이의 특성은 선생님들이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담임선생님 두 분은 우리 첫째 아이가 어떤 기질이고, 어떻게 대응해줘야 하는지 담임이 되면서부터 많이 논의하셨다고 했다. 강하게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아이에게 맞추어 날카롭진 않지만 강하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사뿐사뿐 말해서'라는 표현이 정곡을 찔렀나 보다. 아이의 말이 엄마나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 그다지 사뿐사뿐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만 같았다. 이전에 아이가 다른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선생님께 맨날 혼나서'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 아이를 잘 아는 나로서는 속으로 '네가 혼날 행동을 많이 해'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었다. 그리고는 속상했을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던 기억이 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 어린이집에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인가? 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어려 새롭고 낯선 환경보다는, 익숙하고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곳에서의 생활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낮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선생님도 이미 아이를 잘 알고 대해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아이는 이미 더 커버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곳도 궁금하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이 궁금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놀이하는 것이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 양육기준을 고집하느라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을 간과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불어 나도 우리 아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점점 아이를 특정한 방식으로만 대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였다.


가끔은 우리 아이가 다른 곳에 가서 "우리 엄마는 사뿐사뿐 말해서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변화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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