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밥 대신 떡볶이를 끼니로 먹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같은 동네에서 나왔지만 집에서 약간씩 거리 차이가 있었다. 초등학교는 걸어갈 정도, 중학교는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고등학교는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거리였다. 신기하게 그 정도의 거리 안에서도 유명한 떡볶이 집은 모두 달랐다. 유명한 곳은 한 군데만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친한 무리 여러 명과 가는 떡볶이집과 소수의 더 친한 몇몇과 가는 떡볶이집이 다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앞 컵떡볶이를 달고 살았다. 중학교 때는 점심급식을 신청하지 않고 친구 6명이 천 원씩을 모아 매일 점심시간마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 갔다. 그 집은 떡볶이도 맛있었지만, 치킨 양념을 뿌려주는 튀김도 예술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같이 독서실을 다니던 친구들과 일주일에 다섯 번은 역전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
나는 쌀떡이든 밀떡이든, 떡볶이에 치즈를 넣든, 통오징어를 넣든, 곱창을 넣든 가리지 않는다. 떡볶이를 쿨피스와 먹든, 맥주와 먹든, 하이볼과 먹든 다 좋다. 중, 고등학교 동창들과 배달음식을 먹을 때 메뉴 중 하나는 무조건 떡볶이다. 대학교 동기 중에 한 명과는 만나기만 하면 떡볶이를 먹었다. 만나는 장소가 달라져도 메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단 장소를 정하고 그 동네 맛집을 찾다가 "여기 어때?"하고 묻는 메뉴는 항상 떡볶이였다. 그럼 또 상대방은 "오! 좋다, 좋다."라고 대답했다. 참 신기할 정도로 떡볶이만 골랐고, 좋다고 동의했다.
남편도 어릴 적 떡볶이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시댁 근처에 꽤 유명한 시장이 있다. 그 시장 안에 떡볶이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자주 갔다고 했다. 함께 남편이 어릴 적부터 다니던 시장에 구경 갔을 때 엄청 신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정도의 여러 떡볶이집들이 연달아 늘어서 있었다. 천장에 달린 간판은 달랐지만 가게들 간에 경계가 따로 없었다. 걸어가다 빈 테이블에 앉았을 때 그 집이 어느 떡볶이집인지 알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남편도 떡볶이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랐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만큼이나 떡볶이를 좋아하겠구나 혼자 생각했었다.
남편과 연애 때 매운 떡볶이가 유행이었다. 한 번 먹어보자 말만 하다가 어느 날 마음먹고 매장에 갔었다. 지금처럼 매운맛의 단계가 다양하지 않아 선택할 것도 별로 없을 때였다. 매운맛을 시키고, 주먹밥도 하나 시켰던 것 같다. 쿨피스가 있었지만, 저걸 굳이 먹을까 싶었다. 떡볶이가 나오고 한 입 베어문 순간 왜 쿨피스를 같이 파는지 너무나 이해가 갔다. 어쨌든 시켰으니 하나씩 겨우겨우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결국 다 먹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꽤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옆 테이블과 비교해 보니 우리가 먹긴 먹은 건가 싶었다. 그날 남편은 너무 매운 것을 먹고 배가 아파 밤새 데굴데굴 굴렀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브랜드의 매운 떡볶이를 먹지 못했다. 그 떡볶이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남겼다.
남편과 결혼한 후, 배달음식을 고르며 남편에게 떡볶이를 시켜 먹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싫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떡볶이는 간식인데 만오천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시켜 먹는 게 싫다고 했다. 그리고 매운 떡볶이를 한 번 먹은 이후 본인은 그 브랜드의 매운 떡볶이는 먹지 않기로 했단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물었더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매움의 한계치를 넘어선 맛이란다.
나는 남편과 연애할 때 매운 떡볶이를 먹은 이후에도 친구들과 만나면 자주 먹었었기 때문에 먹을만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매운 정도를 선택할 수 있어 조금 덜 맵게 먹을 수도 있었다. 이런 변화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먹기도 힘든 매운맛의, 밥도 아닌 간식을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느냐! 남편은 이 주장만을 내세웠다. 다른 배달음식도 많았기에 남편과 실랑이를 멈추고 다른 음식을 시켰다.
배달음식을 먹으며 떡볶이에 이야기하다 보니 남편과 나는 떡볶이에 대한 개념이 달랐다. 나는 떡볶이를 '밥을 대신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떡볶이를 '출출할 때 먹는 간식'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에서 파는 한 그릇에 3~4천 원 정도의 떡볶이가 남편이 떡볶이에 쓸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연애를 할 때는 어쩌다 한 번씩 떡볶이를 먹었기에 떡볶이에 대한 서로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연애하면서 먹을 것들이 많으니 떡볶이를 자주 먹을 일도 없었다. 그냥 서로가 떡볶이를 좋아하는구나 정도 생각할 뿐이었다.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후에도 떡볶이를 밥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편과 배달음식으로 떡볶이를 시키는 일을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다. 어쩌면 그것도 후하게 쳐서였다.
아이를 낳고 나니 떡볶이를 먹을 일은 더더욱 없어졌다. 수유를 할 때는 매운 음식을 피해서였고,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는 아이의 입맛에 맞추어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아이가 없이 식사를 하면서 떡볶이를 먹게 되면 정말 행복했었다.
아이가 4살 후반부 정도 됐을 때, 어린이집 급식에 빨간 김치를 선택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매워서 먹지 못하고 항상 백김치만 먹었다. 빨간 김치도 먹어볼 수 있게 설득해보려고 했는데 아이가 선수를 쳤다.
"나는 매운 걸 먹으면 배가 아플 거 같아."
아이가 어릴 때 호기심에 엄마, 아빠가 먹는 매운 걸 집어든 아이에게 이걸 먹으면 배가 아야 하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니 이제와 매운 걸 먹어보라는 말이 아이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들릴 법도 하여 더 강하게 권유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딸을 낳으면서부터 바랐던 한 가지 소망을 전달하며 살짝 어필했었다.
"새별이도 언니가 됐으니까 매운 것도 조금씩 먹는 연습을 해야 해. 엄마는 떡볶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새별이랑 같이 떡볶이를 먹는 게 소원이야."
아이는 떡볶이가 뭔지도 잘 몰랐기에 별 반응이 없었다. 오로지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빨간 김치를 어떤 친구가 용감하게 먹었는지만 신나게 얘기하고 있었다. 난 속으로 언제 딸이랑 마주 앉아 매콤한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얼마 전 남편이 어릴 적 자주 가던 떡볶이집에 가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도 가까워 시장에 들르면 지나는 곳인데 아이와 함께 간 것은 처음이었다. 떡볶이, 순대, 튀김, 꼬마김밥 등 다양하게 시켜놓고 한창 먹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는 소원을 이뤘네?"
시장에서 떡볶이 먹다가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응? 엄마가 무슨 소원을 이뤘어?"라고 되물으니,
"엄마가 나랑 떡볶이 먹는 게 소원이라고 했잖아."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니...... 내 딸이 너무 기특했다. 내가 그 말을 한지 벌써 2년이 넘게 지나 있었다.
"새별이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엄마가 소원이라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지."
"그랬구나, 그런데 새별아 너 지금 떡볶이 안 먹고 있잖아."
아이는 아직도 매운 걸 먹지 못한다. 아주 극소량의 매운맛이 들어간 정도는 시도하지만 그 이상은 거부한다. 그러니 떡볶이는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원을 이뤘다는 건가 싶었다.
"난 안 먹고 있지만, 엄마가 나랑 같이 앉아서 떡볶이를 먹고 있으니까 소원을 이룬 거지."
기가 막혔지만 또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아이는 자신과 같이 떡볶이를 먹는 게 엄마의 소원이라는 말을 그냥 엄마가 떡볶이를 먹을 때 옆에 같이 앉아있으면 된다는 것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번 더 부정해 보았다.
"엄마는 새별이도 같이 떡볶이를 먹는 게 소원이었던 거지."
"아니야, 엄마는 소원을 이룬 거야. 그럼 나중에 내 소원도 하나 들어주는 거다!"
아이는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지, 본인이 떡볶이를 같이 먹었나 안 먹었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중에 내가 제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만 강조했다. 그래서 나도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쳐다보는 눈빛만큼은 '어떻게 저런 애가 내 속에서 나왔을까' 싶은 기특함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능글맞게 내 소원을 들어줬다는 명분으로 제 소원을 챙기는 아이일지라도, 내가 흘리듯 한 얘기를 기억하고 몇 년이나 지나 떠올렸다는 게 기특하기만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