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 사회초년생 때부터 몇 번 이직도 했지만 매번 외국계에서 일해왔다. 그래서 해외출장도 잦았다. 원래는 남편이 가지 않아도 되는 출장도 상황이 엉키면서 가야 할 사람이 못 가고 남편이 가게 되는 일도 있었다. 남편이 태어나고 시할아버님이 사주를 보니 비행기를 많이 타는 팔자라고 하셨다는데, 그래서 가지 않아도 되는 출장까지 가게 되는 건가 싶었다.
보통 한번 출장을 가면 짧으면 5일, 길면 2주가 걸리기도 했다. 남편의 출장은 언제나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두려움의 종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에 달려졌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남편은 비교적 긴 출장을 많이 갔었다. 일주일은 기본이었고, 2주 정도였다. 잦으면 분기에 한 번, 적어도 반기에 한 번씩은 꼭 해외출장을 갔다. 그때는 혼자 자는 게 무서웠다.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밤에 혼자 집에 있다가 자는 것이 불안했다. 30년 인생을 사는 동안 현관문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혼자 잠을 자 본적이 거의 없었다. 자취를 해본 적도 없었고, 혼자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외국에서 오래 지내던 때에도 룸메이트가 있었다. 그래서 침대에서는 혼자 자더라도 방문만 열고 나가면 항상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안심되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남편이 오랜 기간 출장을 가버리면 그런 안심되는 무언가가 없어서 불안했던 것이다. 혼자 자는 것은 좀처럼 단련이 되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으나,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평일에 우리 집에 와 자고 가는 것이 쉽진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남편이 해외출장을 가도 더 이상 혼자 잘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도 두려움은 계속됐다. 이 작은 아이를 일주일 동안 내가 혼자 돌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출산 후 남편이 첫 해외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딸내미와 아주 애틋한 이별을 하듯이 출장을 떠났었다. 그래봤자 4개월 된 딸내미가 뭘 얼마나 안다고 한참을 내려다보며 작별인사를 하던지...... 남편이 떠나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었다. 난 혼자가 아니고, 아이를 지켜야 한다 생각하니 혼자 밤을 보내며 무서워하던 곳에서 더 이상 무서워할 수만은 없었다.
며칠 후 아기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유독 무더웠던 여름이라 어디고 에어컨을 아주 빵빵하게 틀던 때였는데,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 밖으로 나오면 더웠다 어딘가를 들어가면 추웠다를 반복하여 감기에 걸린 듯했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 칭얼거리던 아이를 안고 달래며 밤새 한숨을 못 잤었다. 낮에는 낮대로 힘들었다. 목이 아픈지 먹을걸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고 기침을 하다가 토하기 일쑤였다. 또 약 먹기 싫어서 몸부리 치다가 토를 하기도 했다. 남편과 둘이라면 한 명은 아이를 씻기고, 한 명은 바닥에 어질러진 것을 치웠겠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토하고 씻기고도 하루에 몇 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꼬박 3일을 아프고 아이가 다 나은 후 남편이 돌아왔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이 해외출장을 가면 이상하게 아이가 아팠다. 마치 내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인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힘든 일을 나 혼자 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출장이라는 말은 이제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남편의 해외출장은 3년간 자취를 감췄었다.
여전히 남편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이 위드코로나로 방역대응정책을 바꾸면서 다시 남편의 해외출장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그 사이 아이가 많이 커서 혼자 아픈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조금 생겼었다.
출장의 의미를 잘 모르는 아이에게 아빠가 일하러 외국에 잠깐 다녀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외국은 얼마나 머냐, 차 타고는 못 가느냐, 그 나라 이름이 무엇이냐, 거기는 외국사람 말을 하느냐며 질문을 쏟아냈다. 하나하나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다음 날, 아이가 어린이집 하원을 할 때였다. 선생님께서 오늘 아이가 선생님들을 모두 웃겼다고 하시길래 무슨 이유인가 했다.
"어머님, 오늘 새별이 덕분에 저희 모두 빵 터졌어요."
"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버님께서 해외출장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어제 갔어요."
"그래서 아빠 어디로 출장 가셨는지 물었는데요, 새별이가 '우리 아빠 쌍꺼풀 갔어요!'라고 대답해서 다들 정말 웃었어요."
"푸하하하하하" 듣자마자 나도 엄청 크게 웃어버렸다.
그때 남편은 싱가포르로 출장을 갔었다. 전날 아빠가 가는 나라가 어디인지 묻기에 싱가포르이라는 나라를 간다고 대답해 주었었다. 말할 때는 편하게 '싱가폴'이라고 발음했었다. 그런데 나라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제가 아는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얘기한 듯했다. 아이가 쌍꺼풀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선생님들께서는 싱가포르이라는 것을 모두 알았을 것이다.
집에 와서 아이와 다시 아빠가 출장 간 나라 이름을 얘기해 보았다.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쌍꺼풀이라고 대답했다. 너무 웃겨서 시댁에도, 친정에도 전화를 걸어 오늘의 에피소드를 전해드렸다. 양가 부모님들도 모두 깔깔깔 웃으셨다. 그렇게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웃고 얘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출장 간 남편의 빈자리로 인한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의 작은 실수 덕분에 오히려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가 아프면 어쩌나, 둘이 자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그날은 아이가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었다.
이제 아이는 싱가폴이란 외국의 이름을 잘 안다. 하지만 요즘도싱가폴을 쌍꺼풀이라고 한다. 더불어 이 장난꾸러기는 쌍꺼풀은 싱가폴이라고 한다. 잘못 말하면서도 아주 당당하다.
"우리 아빠는 쌍꺼풀에 갔고, 동생들 눈에는 싱가폴이 있어!"
이건 무슨......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여전히 순수한 아이 덕분에 많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