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부쩍 쫑알거리는 게 늘어나고, 쌍둥이는 몇몇 단어를 발음하던 때였다. 수다가 늘어난 첫째는 제 할 일도 않은 체 매일 무얼 그렇게 얘기했다. 시답잖은 내용이었지만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 아니면 그냥 얘기하도록 두었다. 하루에 엄마 아빠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미운 6살이라 그런지 엄마 아빠를 제법 잘 놀리고, 맞는 말로 뼈를 때리기도 했다. 자기는 그냥 보는 대로,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인데 엄마 아빠가 느끼기에 뼈 맞은 거 같았겠지만 말이다. 놀리는 게 어떤 건지 모를 때는 간혹 부정적인 단어를 썼을 때 그런 말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 주는 정도였다. 말을 잘하면서 놀리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꽤 합리적으로 놀리는 말을 몇 번 듣다 보면 어른이지만 약 오른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 정말 유치하게 아이와 똑같이 놀리는 말을 주고받았다.
“엄마, 배가 뚱뚱한 거 보니까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애기들은 이미 태어났잖아.”
“아직도 아기가 있는 거 같은데?”
“없어.”
동생들의 임신과 출산과정을 본 이후라 첫째 아이는 배 속에 아기가 있으면 배가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많이 먹은 날은 내 배를 보면서 아기가 있는 거 아니냐고 놀려댔다.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아이에게 계속 똑같은 대꾸를 하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리고 놀림이 계속되면 슬슬 약이 올랐다.
“새별이도 배가 이렇게 나온 거 보니까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엄마보다 배가 더 나왔는데?”
“새별이 배 속에 아기 없어!”
“그럼 왜 이렇게 배가 나왔을까?”
결국 아이의 놀림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작전으로 유치하게 대응했다. 나중에는 아이가 아니라고 눈물을 터트릴 때도 있었다.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속으로 ‘그러니까 까불지 마.’ 생각하기도 했다.
5인 가족의 평일 아침은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원준비로 항상 정신이 없었다. 특히 화장실이 하나인 집에 살고 있기에 준비하려면 더욱 혼이 쏙 빠졌다. 내가 씻고 쌍둥이를 씻기고 난 후 첫째가 씻고 남편이 씻었다. 가끔은 반대 순서로 씻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순서로 씻든 항상 정신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쯤 첫째 아이는 영어를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종종 할 때였다. 영어를 배운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영어 수업이 있는 날 수업에서 어떤 걸 배웠는지 물어보면 매번 까먹었다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바로 얼마 전에는 그동안 배운 파닉스를 발음하며 처음 보는 단어의 알파벳을 보고 스스로 파닉스를 조합하여 발음했다. 엄청 기특하여 폭풍칭찬을 해주었었다.
며칠 후,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쌍둥이 중 한 명을 씻기고, 다른 한 명을 씻기는 중이었다. 첫째 아이는 아빠가 동생을 씻기는 것을 보고 있었다. 쌍둥이들은 말문이 트이려는지 한창 외계어를 내뱉었다.
“대드디디디디.”
자주 듣는 외계어의 나열이라 나와 남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디디으다따 대디나나.”
가만히 동생이 씻는 걸 보고 있던 첫째 아이가 입을 열었다.
“한결이가 아빠한테 대디라고 한 거 같아.”
그러자 남편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한결이가 대디라고 한 거 같다고? 전혀 아닌 거 같은데?”
나도 한마디 보탰다.
“한결이는 아빠도 말 못 하는데 대디를 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첫째 아이가 답답하다는 듯 다시 말했다.
“아니, 아빠한테 돼지라고 한 거 같다고.”
응? 크크크크크크크킄 난 한참을 웃었다. 나와 다르게 남편은 웃지 않고 아기가 왜 아빠한테 돼지라고 하냐며 펄쩍 뛰었다. 아이가 이제 한국말로 엄마 아빠를 놀리다 못해 영어까지 써가며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적절한 언어유희였다(실제로 남편이 배가 조금 나옴). 대디라는 단어가 어려운 영어는 아니지만 아이가 발음이 비슷한 돼지라는 단어로 바꿔치기했다는 것이 아주 기특했다. 별 거 아닌 상황에서 나름대로 영어를 가르친 보람을 느낀, 재치 있는 아이의 말에 맥락 없이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엄마가 됐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