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전투식량을 챙긴다!

지는 싸움이 가족을 남긴다.

by 감차즈맘 서이윤

남편과 나는 부부싸움을 하면

남편은 입맛을 잃었고

나는 입맛을 되찾았다.


평소엔 밥맛이 없던 나인데

말다툼의 신호가 감지되면

갑자기 밥이 꿀맛이 되어

식욕이 돌았다.


나는 전쟁에 나온 군인처럼

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곤 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아,이것은 장기전이구나.

체력을 분배해야겠다.'


싸움이 전투라면

나는 전투식량을 챙기는 쪽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이 지나면

남편은 쵸컬릿 녹듯 야위어 가고

반면 나는

살이 오른다.


반면 평상시 잘 먹던 남편은

싸움이 시작되면

식욕을 잃은 채 밥을 굶고

식음을 전폐하곤 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그동안 남편은 명태마냥 쪼그라 들고,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남편은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나는 몸이 먼저 버틴다.


그런데 아이들과 부딪힐 때면

이상하게도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며칠이고 식욕을 잃었고

구라쟁이는 여전히 잘 먹었다.


아이들과의 싸움 앞에서는

단기전도 장기전도

생각할 틈이 없다.


싸움만 시작되면

그저 식욕이 사라진다.


식음을 전폐.

물도,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도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여위어 가면

구라쟁이는

아이들을 잡는다.


하지만 남편과의 싸움이 남긴 건

남편의 다이어트와

나의 탄수화물 축적이었다.


밴댕이는 오늘도

체력을 키우며 싸움을 준비한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니까 .

한번 시작된 싸움에서 물러설 수는 없으니까.


그게 내 인생의 모토였는데....

이제는 좀 바꿔야 할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떠난 후

깨달았다.


싸움의 승자는

사랑을 많이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덜 주는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구라쟁이였고,

아이들을 더 오래 붙잡고 있던 사람은

밴댕이인 나였다


그러니

싸움에 져 본적이 없는 나일지라도

어떻게

아이들하고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겠는가.


이제는

이기고 지는 싸움보다

그 싸움끝에 누가 남아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사람 마음이란게 참 이상해서

가끔은 여전히

괜히 한번쯤

이기고 싶어질때가 있다.


이제는 안다.

이기는 싸움은 자존심을 남기고,

지는 싸움은 사람을 남긴다는 것을.


...그런데 안다고 해서

사람이 바로 변하는 건 아니더라...


그래서일까.

아주 가끔은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


돌아보면

우리 가족은 싸우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서로의 체중을 관리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넘편은 굶어서 빠지고,

나는 먹어서 쪘다가도

아이들하고의 싸움에서는

다시 빠지는

아주 공정한 시스템.


역시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찌우고,

또 여위게 한다.



목요일 연재
이전 22화밴댕이 변명을 하다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