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빠의 딸로.
오늘 하루는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나는 원래
태생적으로 입이 짧다.
모성애가 부족한 건지,
입이 짧아서 그런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브런치 시작은 완벽했다.
오랜만에
애들과 브런치를 갔다.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남편이 먹기도 전에
자기 음식을 덜어 내 접시에 얹어주었다.
아들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한 숟갈을 건넸다.
그 와중에 딸은
와그작, 와그작-
이미 폭풍 흡입 중이었다.
잠시 후,
딸이 물었다.
“엄마 먹을래?”
“아니, 너 먹어.”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애들이 남긴 걸 먹은 적이 없었다.
왜 남기냐고 툴툴대면서도
입에 넣지는 않았다.
그걸 대신해 준 사람은 늘 남편이었다.
내가 버리려 하면 꼭 이렇게 말했다.
“아깝잖아. 내가 먹을게.”
그런 남편, 오늘도 변함없었다.
문제는 아이스크림에서 터졌다.
애들이 아이스크림을 샀다.
남편은 이가 시리다며 원래부터 안 먹고,
나는 혼자 다 못 먹는 타입.
오늘은 애들이 둘이나 있으니
'나도 각자 한 입 먹을 수 있겠지?'
살짝 기대했다.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전에 내 앞에 내밀었다.
“엄마 한 입 하세요.”
"어, 고마워. 호호호."
딸은 이미 먹고 있었다.
그리고 뻘쭘했는지 말을 걸었다.
“엄마도 먹어.”
“안 먹어.”
“왜? 맛있는데.”
“너 먼저 먹었잖아. 안 먹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먹어.”
“… 싫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딸이 던진 한마디.
“엄마는 왜 그래?”
뚜껑 열림.
“뭘?”
“왜 그러냐고.”
“우리한테는 그러지 말라면서
엄마는 왜 그래?”
나는 더 기분이 나빠졌다.
“할아버지한테 물어봐.
할아버지는 엄마가 너희에게 하듯
그렇게 안 가르쳤어."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원래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만 이야.
엄마도 그거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 힘들었어.
그래서 너희는
반대로 키운 거잖아.
..... 엄마에게 고마워해야지."
잠깐 멈췄다가, 나는 덧붙였다.
"억울하면
나중에 너 자식은 네 방식대로 키워.”
그때—
우리 집 구라쟁이가 등장했다.
“야, 열 마디.
엄마한테 따지지 말고
너는 나중에 아빠처럼 네가 그냥 다 좋다 하는 남자 만나.
그럼 돼.”
나는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렇지, 구라쟁이 오늘 일 잘하네.'
그러자 듣고 있던 딸이 억울했는지
갑자기 아들을 소환한다.
“야, 넌 어떻게 생각해?”
삼천마디가 침착하게 말했다.
“약간 이해는 안 가지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누나가 억울하면…
엄마 말대로
할아버지한테 말해.
소용없겠지만.
그리고 엄마 말대로
나중에 누나 애들한테 그렇게 해!”
역시 삼천마디…!
속으로 환호하고 있을 때—
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또 한마디 던지려는 찰나—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계속할 거야?"
잠깐의 침묵.
그 침묵 사이로 아들은 자기 먹을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집어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다 먹었는데....
엄마가 원하는 걸로
하나 더 살까?
그럼 엄마도
맛있게 한 입 먹을 수 있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맞다.
정말 별일 아니었다.
아이스크림 한 입이면
끝날 일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아이들 앞에서
꽤 자주 철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철없음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남편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남은 걸 먹어주고,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내 편을 들어주고
딸은 끝까지 따지면서도
결국은 내 옆에 남아있다.
그래서 가족인가 보다.
아이스크림 하나로
난리가 났다가도,
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하루가 지나간다.
아이들 앞에서
속 좁은 엄마로 살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다시
아빠의 딸이 된다.
오늘은
아빠가
조금 더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