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에서도 당연한 건 없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열 마디가 녹음한 거 있어.
엄마한테 들어달라고 한 건 아닌데…
당신도 들어볼래?”
링크 하나를 툭 보내고는 전화를 끊는다.
"당신, 들어보니까 어때?"
잠시 뒤 남편이 다시 묻는다.
“글쎄… 어제 지도교수가 봐준다고 하더니,
이거 봐준 거래?”
그렇게 묻는 순간,
남편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린다.
“글쎄… 모르겠네. 내가 물어볼게.”
그리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한참 뒤, 다시 전화가 온다.
“열 마디가… 나를 혼냈어.”
“왜?”
"아니, 내가 말 떨어지자마자 그러더라.
'아빠, 엄마한테 보여줬어?' 하고."
"그래서?"
응 보여줬다고 했지.
그냥... 같이 들으려고 그랬다고."
그러자 딸이 쏘아붙였단다.
“아빠는 생각이 있어, 없어?
내가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었으면
엄마한테 들어달라고 했겠지.
아빠한테만 보냈잖아.
그럼 -
아빠만 듣고 말았어야지!”
억울해진 남편이 하소연을 이어가려는 순간,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억울해진 남편이 하소연을 이어가려는 순간,
내 전화가 울렸다.
남편에게 “잠깐만, 좀 있다가 얘기하자.”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딸의 전화를 받자마자,
열 마디 딸이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졌다.
“엄마 들었어?
그거 그냥 한 거야. 신경 쓸 거 없어.
아빠가 교수님이랑 같이 녹음했냐고 묻는 순간
아— 엄마한테 갔겠구나 싶어서
갑자기 짜증 나고 화가 났어.
그냥 녹음한 거지,
엄마한테 들려주려고 한 게 아니라고—”
늘 말 없던 아이가
말을 쏟아낼 때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리곤 마지막에 조심스레 나에게 묻는다.
“엄마, 어땠어?”
나는 또, 못 참고 답했다.
“어… 잘했어.
근데 활 바꿀 때 살짝 소리가 들려서,
좀 더 부드럽게, 표 안 나게 해 보면 좋을 거 같고...
비브라토도 네가 표현하는 감정에 따라 달리 해보면 좋을 거 같아.
첫 부분 들어갈 때 네가 뭘 표현하려는지
조금 더 의식하면 더 좋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나를 보며
순간 '아차' 싶었다.
하지만 물은 이미 쏟아졌고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대충 얼른 얼버무리고는
나는 딸에게 단 한 가지만 물었다.
“아빠한테 '엄마한테 보내지 말라’고 했어?”
“… 아니.”
“그럼 네가 할 말은 없지.
싫으면 다음엔 분명하게 말해
아빠만 보라고!"
"당연히 안 보낼 줄 알았지.
이게 말이 돼?
초등학생도 아니고..."
"아니, 말이 돼.....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네가 싫으면 다음엔 정확하게 말해야 돼.
그게 서로를 위한 거야.
너한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열내지 말고
다음부터 말해."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남편이 기가 찬 듯 나에게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말이 되냐고?
열 마디가 엄마한테 들려줬다고 나한테 막 뭐라 하는 거 있지?
이게 말이 돼?
내가 무슨 동네 북도 아니고!"
오늘따라 구라쟁이 남편은
밴댕이인 나보다 더 억울해 보였다.
그래서 더 수다스러웠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가족 안에서도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을.
내겐 아무 일 아니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고,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부담’ 일 수 있다는 것을.
내겐 별것 아닌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내가 늘 하던 말이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된다.
오늘,
나는 또 한 번 배운다.
나는 여전히 밴댕이지만,
어제와 같은 밴댕이는 아니다.
그 정도면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