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번째 전투, 그리고 끝이 났다고 생각한 날 다시 시작되었다.

by 감차즈맘 서이윤

우리는 서로 다름을 모른 채 결혼을 시작했다.

살면서 하나둘씩 차이를 인정해 가며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어느 날 나의 첫 번째 전투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치열했다.


치열했다기보다는,

밴댕이 혼자 전쟁을 선포한 쪽에 가까웠다.


그 전투가 끝이라고 믿었던 날,

우리는 뜻밖에 또 다른 시작 앞에 서 있었다.


첫 딸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 별것 아닌 일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큰일이 닥쳤을 때는 오히려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했는데,

작은 일에서는 이상하리만큼 타협이 안 됐다.


남편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거나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이었다.


나는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에도

흑백이 분명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면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고,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건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되는 성격이었다.


아마도

다툼은 그런 차이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공과금을 내는 일은 남편이 맡겠다고 해서 넘겨줬는데,

그는 석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내 심장이 멎기 직전에 꼭 한 번씩 늦게 냈다.


나는 그런 걸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고지서가 날아오면 확인하고

제일 먼저 내야 마음이 놓였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집이 떠나갈 정도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처음엔 대화였지만,

화가 화를 부르며 서로를 비난했고,

결국 “헤어지자”는 말까지 꺼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남편은 짐을 챙겨 나갔고

나는 열 달 된, 걷지도 못하는 딸아이와 둘이 남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나는 곧장 한국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삿짐 업체와 통화했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작은 아파트 전세와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물론 엄마 아빠에게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처럼 이삿짐을 싸고,

집도 팔 생각에 여러 부동산에 전화를 돌렸다.


그때부터 남편에게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띠리링, 띠리링"


문자에 답하지 않자

곧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지 않자

집 앞 어딘가에 주차해 기다리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참 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얼굴이 새까맣게 질린 남편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풀이 죽은 어깨,

한 발은 문 안에,

다른 한 발은 문 밖에 걸친 채

“잠깐만 얘기하자”라고 사정했다.

문을 닫으려 하자

그는 한 발로 문을 버텼다.


“왜? 나 지금 바빠.”

“뭐 하느라 바쁜데…”

“이삿짐 싸느라 바빠.”

“뭔 이삿짐?”


눈이 커질 대로 커진 남편은

그제야 거실과 현관 앞에 놓인 짐을 보았다.


“뭐냐고?”


“뭐긴 뭐야.

네가 알아서 뭐 해?

양육권도 다 포기한다며.

물을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지.

할 말 있으면 나중에 문자로 해.

위자료도, 양육비도 필요 없어.

이사할 집 주소만 나중에 문자 해.

서류 보낼게!”


그렇게 문을 닫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남편이 매달렸다.


“너,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어떻게 한 번을 안 잡아?”


“나 원래 냉정해.

몰랐어?

예전부터 알았잖아.

그리고 나 바빠.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어.

지금 할 일 많아.

우선 정리부터 하고 나중에 얘기해.”


남편이 다시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딱 10분만 얘기하자. 제발...”


그래서 나는,

그래도 결혼해서 함께 살아온 예의로 10분은 내주기로 했다.


타이머를 10분으로 맞추자 남편은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렇게 말을 빨리,

그렇게 많이 하는 사람인 줄

그날 처음 알았다.


어느새 알람이 띠리링 울렸고,

내가 일어서자

남편은 나를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못 헤어진다면서,

이렇게는 헤어질 수 없다면서,

내가 싸 놓은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나고 꼴 보기가 싫어서,

나는 아이와 함께 여행사를 찾아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엘에이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빗줄기가 스치듯 흘러갔다.

갓난아기는 칭얼거렸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와 단둘이 떠난 여행 내내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 시간 내내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것이 끝일까.


여행을 마치고

10개월 된 딸아이와 관광버스에서 내리자,

남편이 어찌 알았는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다 정리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나는 아직 결정 안 했는데… 무슨 소리야.”


“후회 안 하게 해 줄게.

앞으로 진짜 말 잘 들을게.

당신 없이 나는 못 살아.”


실없는 농담을 연신 얹으며

그는 계속 말했다.


집에 도착하니 바닥이 번들거릴 만큼 깨끗했다.

정말 말로 다 못할 정도로 집이 반짝반짝 청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자신이 지키겠다는 약속이

편지로 곳곳에 붙어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두 번째 결혼의 시작이었다.


첫 번째 전투의 끝에서 남편은

완전히 KO를 당했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배우며

두 번째 결혼을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고맙다고 말하면

남편은 늘 으쓱하며 농을 친다.


“그렇지?

내가 손바닥 손금이 없어졌어.

당신 잠꼬대 소리에도 내가 벌떡 일어난다니까!”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일 것이다.


아이들이 다 떠난 지금,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밴댕이가

가끔은 고래인척하고 살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구라쟁이가 진짜 고래였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밴댕이는 밴댕이라는 걸 명심하기를 바라면서,

구라쟁이 진짜 고래에게 말한다.


“이제는 받아줄게.

그래도, 선은 넘지는 말고

연체는 말할 것도 없고!”


농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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