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늘 또 다른 새로운 아빠가 있었다.
오늘 아침도
구라쟁이 남편은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나 보다.
잠에서 깨어 방을 나서니
소파 위에 옷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 봐도 훤하다.
분명 까치발로 살금살금 나갔으리라.
예민한 나를 생각해
불도 켜지 않고,
사소한 부스럭거림조차 삼켰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물며 우리 집 강아지 두 마리조차
내가 자고 있으면 절대 깨우지 않는다.
같은 침대에 자고 있어도
아이들도, 강아지들도
오로지 구라쟁이 아빠만 깨운다.
보고 배운 게 그것이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가끔 그런 구라쟁이를 보고 있으면,
말 많은 삼천마디 아들은
분명 저쪽 핏줄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단언컨대,
내 쪽은 아니다.
나는 그만큼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했음을
스스로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표현을 잘한다.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고마워.”
가끔은
“당신밖에 없어~ 호호호”
하고 립서비스도 한다.
밴댕이도 양심은 있다.
그럴 때면 딸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지만,
구라쟁이는 늘 내 편이다.
그 재미에
나는 살아간다.
오늘 오후, 남편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오늘은 당신 빵 부자 된 날이야.
고객들이 간식을 잔뜩 사 왔어.
좀 있다 들고 갈게, 기다려~”
빵 사진에 군밤에 도넛까지
난리가 났다.
그러면서 사진 속 하트가
계속 날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팡파르 사진을 보낸다.
(빵+팡파르. 나만 쓰는 단어다.)
구라쟁이 남편은
어릴 적 내 아빠처럼,
고객들이 건네준 과자나 사탕 하나도 혼자 먹는 법이 없다.
늘 퇴근길에 꼭 챙겨 와
내게 건넨다.
그러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나밖에 없지?
내가 당신 먹으라고
하나도 안 먹고 그대로 가지고 왔어.."
내가 회사에서 먹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결혼 20년 내내 그는 늘 집으로 가져왔다.
그럴 때면
어릴 적 아빠 생각이 난다.
어릴 적 아빠가 나에게 건네던 초코파이나 보름달이
이제는 아빠 대신 구라쟁이 손에 들려 돌아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빠의 사랑이 나를 채웠고
지금은
구라쟁이가 허기진 나를 채운다.
사소한 걸 함께 나누는 마음.
그것이
허풍 섞인 구라쟁이의
또 다른 얼굴이다.
아마도 나는
그 한결같음을 믿고,
또 그 사랑을 힘 삼아
이 결혼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아닐까.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내가 밴댕이처럼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곁에서 늘
구라쟁이라는 든든한 백이 되어준
남편 덕분이었다는 것을.
구라쟁이,
오늘 간식 잘 먹을게.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해.
나는 이래저래
끝까지 모른 체할 거다.
밴댕이로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