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카드 한 장에 구라쟁이 시무룩해진 날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우리 집 고래는 밴댕이 편이다.

by 감차즈맘 서이윤

누군가 나를 위해

“해피 발렌타인”을 챙겨보는 건

아주 오랜만이다.


남편이 챙기려 해도

그 번거로움이 싫은 나는 늘 말했다.


“맨날 매일이 기념일이지 뭐.

뭘 또 따로 챙겨.

애들이나 챙겨줘.”


내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그렇게 대충 지나가곤 했다.


결혼 전에는

꼬박꼬박 생일상을 받아먹던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결혼을 하고 나서는

기념일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날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에게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그리고 카드 한 장.


그건…

왠지 달랐다.


괜히 울컥했다.


잠시 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한테도 생일이랑 겹쳐서

따로 카드 보냈는데 받았어?”


“아니, 아직.”


“어? 이상하다.

같이 보냈는데…

나중에 받으면 알려줘.”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마음이 들떠버렸다.


괜히 우편함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그러다 우편함을 여는 순간.


짜잔.


아빠 앞으로 온

아들의 카드가 도착해 있었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뜯어보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 올라왔다.


도대체 뭐라고 썼길래

내 카드와 따로 보냈을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에게 카드 왔어.

당신 생일이랑 발렌타인 겹쳐서

따로 보냈나 봐.”


남편의 답장.


“어.”


…어?


이게 뭐지.


나는 아들이 카드와 소포를 보냈다고 한 순간부터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커피 마시자는 연락도 거절하고

우편배달만 기다렸는데.


남편의 반응은

단 한마디.


“어.”


참… 시크하다.


그래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오늘 일찍 들어와.”


“무슨 일 있어?”


“아니.

카드 열어보게.”


“당신이 열어봐.”


“그런 게 어디 있어.

빨리 와서 열어봐.”


하루 종일

궁금해서 속이 뒤집힌다.


구라쟁이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카드 여기 있어.”


줬더니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빨리 열어봐.

뭐라고 썼나.”


“어…”


그러더니


옷 갈아입고

손 씻고

주방을 왔다 갔다 한다.


속이 터진다.

터져.


한마디 하려다

꾹 참았다.


드디어 카드를 열었다.


남편의 표정.


… 그저 그렇다.


“뭐래?”


“어… 열심히 하겠대.”


“엥?

그게 다야?”


“어.”


반응이 너무 시원찮다.


그래서 내가 카드를 다시 읽어봤다.


그리고


빵 터졌다.


나에게 보낸 카드와는

완전히 다른 온도차다.


역시.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삼천마디는

내 편이다.


결론은 이거다.


“나도 열심히 할 테니까

아빠도 열심히 일하고

밴댕이 엄마 잘 돌보세요.”


아들의 엄명.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진다.


나는 남편을 보며

절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당신....

나에게 더 잘해야 되겠다.

안 그러면 아들에게 혼이 날 거 같은데.....

큭큭."


남편이 카드 한 번,

나를 한 번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나도 안다고... "


"진짜?

어떻게?"


"삼천마디가 겨울방학 끝나고

가기 전에

나에게 신신당부하고 갔어."


"뭐라고?"


"난 장인어른이 오신 줄 알았잖아.

그래서

그냥 '네네' 했지."


그러더니 툭 덧붙였다.


"이십 년 전에도

똑같은 말 들었거든."


순간


내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쭉~ 올라갔다.


나에게는

"걱정하지 말고 재밌게 지내라"고 하면서


남편에게는

"밴댕이 엄마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를 해 놓고 갔다니.


세상에 수많은 기념일이 있지만

엄마 편 하나 생기는 날이

제일 기분 좋은 날인지도 모른다.


웃기면서도

왠지 짠한 구라쟁이를 보며

괜히 내가 눈치를 보게 된다.


역시

눈치 빠르기로는

밴댕이인 내가 최고 아닌가.


더 이상 놀리면 안 되겠다는

이상 기온 감지.


나는 식탁에 앉아

얼른 화제를 전환해 본다.


"이거 당신을 위해

내가 특별히 만들었어!

호호, 맛있지?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가 챙긴다.

당신 건강이랑 행복."


그리고 한마디 더.


"당신에겐

나밖에 없지."


립서비스까지 얹었다.


구라쟁이 마음도 챙기고

내 편도 챙기고


일타쌍피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구라쟁이 남편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남편의 딸,

열 마디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열 마디 딸에게

발렌타인이라고

문자 왔어?"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이.....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결국,

이 카드 한 장이

오늘 하루의 승부를 갈랐다.


현재 스코어

밴댕이 1 : 구라쟁이 0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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