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가라. 나의 수치심"
나는 마음과 매일 싸운다. 상담사인데도 여전히 마음과 싸우다니. 나 자신이 또 부끄럽다.
그렇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 나의 핵심감정은 "수치심"이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한다.
내가 '수치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건 25살이었다. 상담이라는 학문을 통해 나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하던 해였다. 수치심을 일으키던, 차마 내가 마주 볼 수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 해결되지 못한 사건은 내 안에서 그동안 잘 살고 있었다며 인사하고, 소름 끼치게 말을 걸어왔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만난 수치심이 나의 일상 곳곳을 압도하고 침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27살이었다. 내가 상담학을 졸업하고 개인 상담을 교수님으로부터 받던 시기였는데, 상담의 종결이 다가왔을 때쯤 나는 해방이 되는 좋은 꿈을 꾸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은 수치심과 만날 일도, 싸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담이 끝난 이후, 바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로 갖게 된 첫째. 출산을 하고 그 첫째 아이가 8살이 되었다. 나의 수치심을 알게 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셈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다양한 감정들을 만난다. 기쁨, 즐거움, 놀라움, 환희, 보람 이런 감정들을 만나는 날이 많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분노, 짜증, 슬픔, 무력감, 고통, 괴로움, 우울함 등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유독 잘 가시지 않고 나에게 오래 눌어붙어있는 부정적 감정 상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무기력과 실패감이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도 같았다가, 어느 날에는 끝없이 추락했다. 실은, 요즘 더욱 그랬다.
6년 동안 머물렀던 지역에서 이사하여 연고가 없는 타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그간 맺어왔던 관계, 내가 앞으로 해야겠다며 마음으로 그렸던 기대감들이 지방의 타 지역으로 오니 현실에 파묻히는 느낌이었다. 내가 펼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또 꺾인 것 만 같아 슬픈 시 간을 보냈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고 원했던 대로 상황이 펼쳐지지 못하면 그것이 이때를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에 원인을 두지 못한다. 나는 늘 내가 원인이 된다.
내가 능력이 없고, 내가 멍청하고, 내가 야무지지 못하고, 내가 계획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까지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고, 그냥 이대로 안주하는 편이 나을 거다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태로 SNS를 켠다. 나는 더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야무지게 자신의 삶을 펼치는 친구들을 보면 배알이 뒤틀리고 부럽다가 결국은 또 내가 못났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이런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생각의 굴레가 우울을 낳고 무기력함을 낳는다는 것을 배워서 머리로 너무나 잘 안다. 우울감은 나에게 비난, 분노를 쏟아낼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라는 것. 무기력감은 어릴 적부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에서 의지가 꺾이고,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낸 기대감에 충족되지 못하는 자녀로 스스로 낙인찍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라는 것. 알지. 너무 잘 안다. 그렇지만 쉽게 털어지지 않더라.
그런데 요즘. 그 이유를 더 알아내야겠다는 마음이 일렁였다. 그리고 수치심이라는 녀석과 이제는 좀 싸워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도록 부추기는 일들이 있었다. "너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 바로 이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살아내려고 하는 주변의 친구들이 계속 내 마음에 땔감을 넣는다. 같이 하자고, 같이 가자고. 그냥 거기서부터 시작하라고. 부끄러운 네 모습 그대로 그냥 시작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불을 붙인 사람이 있다. 바로 달빛책방의 박선아 대표.
박선아 대표가 '1% 엄마의 브랜딩'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에서 나와 닮은 삶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치열하게 싸워서 소화해 낸 삶의 흔적들을 읽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자신의 인생과 책에 담긴 질문에서 나의 삶이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나 자신과 싸워봐야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냈다.
"극은 아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지! 칼을 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극은 그것이야. 다른 걸 생각하지 마. 무엇을 향해 싸울 것인가. 인생은 그런 거야."... "이제껏 나는 인생을 '극'적으로 살지 않았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기보다는 피할 방법을 찾으며 살았다.... 잠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정말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거구나. 그게 바로 극이구나. 목숨 걸만한 이야기를 쓰는 거' 인생을 쓴다는 것, 너무도 멋진 일이었다."
나는 이제 수치심과 싸운다. 알아차린 그 시절도 기특하지만, 이제는 싸울 때를 만났다. 나의 수치심이 단단하게 자리 잡도록 했던 지난 시절의 면면을 글이라는 문자에 앉히려 한다. 상처 자체가 나 자신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싶다. 나에게 붙어서 나인 척 행세하던 수치심이 이제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오길 바란다. 치열한 싸움이 되겠지. 곳곳에 숨어서 나에게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나타낼 테다. 하지만 그때마다 글이라는 문자에 앉히고, 그 수치심을 마주 보며 “안녕, 잘 가” 인사할 거다.
“안녕, 잘 가라. 나의 수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