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 년 해야 했던 '장래희망 적기'
오른쪽 (혹은 윗칸)을 내가 먼저 채우고 나면, 그다음 칸은 부모님의 몫이었다.
내가 적어야 할 칸엔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는 것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이, 마라톤 선수가, 작곡가가, 그리고 생각나지 않는 무수한 직업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었는데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나는 학생이다.) 부모님이 적는 칸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로 같은 글자가 늘 적혀있곤 했다.
(OO이는 내 이름이다)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따로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삼 년 전.
중, 고등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자습 감독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한 아이에게 "넌 꿈이 뭐야?" 하고 물어봤던 날이었다.
이 질문을 했던 이유는 '매일 같이 학원에 나와 단어 시험을 보고 수학 문제를 푸는 아이들의 꿈이 궁금했다'라고 삼 년 전의 내가 적어 놓았다.
질문에 대한 아이의 답은 "아빠가 하라는 거요"였고
나는 다시 "그럼 엄마는 뭐라고 하셔?" (참 끈질기기도 했다) 하고 물었는데, 그에 대한 답은 "엄마도 아빠가 하라는 거요"였다.
그리고 그 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쓰였을 (하지만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던) 그 글자들이 떠올랐다.
그리 크지도 않은 칸에 OO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글자를 한 번도 빠짐없이 밀어 넣었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보려니 기분이 묘하다. 귀찮았을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그 글자들에 암묵적 동의를 했을 아빠의 표정도 떠올려본다. 역시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의 쓸모가 생긴 이후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 든든한 아이템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알 것 같다.
딱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내가 알바비를 슬금슬금 모아 유럽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엄마 나 포르투갈, 스페인 등등으로 여행 가려고"라 덜컥 통보했을 때, 내가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은 그 어떠한 염려나 걱정 혹은 질책이 아닌
가끔은 다른 이들의 부모님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말이 없어 (물론 방 청소와 독서에 대한 잔소리는 가끔 하신다. 머리카락은 왜 그렇게 바닥에 떨어지는 걸까...) 나침반 없이 낯선 곳에 뚝 떨어진 느낌이 종종 들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라도 무언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돋보기와 돋보기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언제나가 나에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두리번거린다. 보고, 보고 싶어 하고, 보려 하는 것들. 관찰의 찰나를 이곳에 머무르게 할 예정이다. 가끔 돋보기에 눈을 가까이 대는 게 어지러워 자세히 못 볼 때도 있겠지만, 그럼 또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 않을까?
*브런치 작가명을 지으며_ 내 삶을 살아가는 나는 1인칭, 동시에 세상을 관찰하는 나는 3인칭. 세상을 관찰하며 나의 삶을 살아가는 나는 2인칭 관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_ 앞으로의 내 글을 읽을 누군가(가 있겠지?...있기를..)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마음을 품을 수 있길, 나의 글로부터. 너무 큰 꿈인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