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어폰을 넣어두기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다.
1. 가방 속을 더듬는다
2. 이어폰을 찾는다
3.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4. 바깥소리가 적당히 안 들릴 정도로 음악을 튼다
가끔 1의 행동을 아무리 반복해도 2에 도달하지 못할 때면 불안함과 허전함을 가득 안은 채로 이동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적당히 칸막이를 세우고 졸리고 피곤한 시간을 나름 흥겹게 보내려는 의도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너무너무 너어무 피곤할 때는 이어폰을 꺼내는 일마저 성가시게 느껴져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는 날도 있다. 며칠 전처럼.
약 발은 떨어졌고, 저문 하루만큼 내 체력의 배터리도 닳아버린 저녁. 집으로 가는 지하철, 빈자리를 찾아 풀썩 앉았다. 출발 예정 시간까지는 1분이 남았다고 했다. 1분 참 길구나, 생각하곤 이어폰을 꺼내고는 싶은데 귀찮아 퀭한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들려오던 건-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댁으로 돌아가셔서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 열차는 OOO행 열차입니다.
다들 힘들게 지내고 있지, 싶은 생각으로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종종 투정같이 느껴져 주저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찡찡 거리 곤 하지만 그날도 그런 때였는지 점점 가득 차는 지하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있는 것밖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스피커로 전해지는 기관사 님의 말이 작아진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는 느낌이었다. 순간 핸드폰 메모장에 급히 받아적곤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 역시 지쳐 보였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과 이어폰을 꽂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나 역시도 평소처럼 이어폰을 꽂고 있었으면 못 들었을 말을, 들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는 요즘 이어폰으로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했다. 주변 소리를 너무 안 듣고, 못 듣고 지내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쉽사리 이어폰을 떼어내긴 어려운 나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내리는 역까지 이어폰 없이 가보기로 했다. 또 다른 말들이 스피커를 통해 나올까 봐, 그걸 지나칠까 봐.
그렇게 한참이 지나 내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종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이 열렸고, 나 역시도 문 밖으로 발을 디디려 할 때 스피커에서 고마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