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육아 일기
내가 기억하는 선에선 엄마와 이모들이 함께 하는 첫 여행. 그날이 오기 한참 전부터 엄마는 약간의 미안함과 조심스러움을 담아 나에게는 '부탁'을, 아빠와 동생에게는 '양해'를 구해야 했다. 고작 1박 2일, 그마저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발의 준비 끝에 맞이한 그날. 엄마는 그동안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을 이름표를 슬그머니 내려 두고선 '막내 동생'이 되셨고,
대신에 엄마가 두고 간 그 이름표가 나에게 달리게 됐다.
1박 2일간의 '엄마 체험'이 시작되었다.
첫 째날
엄마는 "동생을 때리지 말고 잘 보살피렴"이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문 밖으로 사라지셨다. 그만큼 이번 체험의 8할은 동생을 돌보는 일에 있었다.
하나뿐이었던 딸을 웬만큼 키워놓으니 생겨버린 늦둥이 딸. 엄마는 '끝날만 하니 또 시작됐다'는 말로 또다시 펼쳐진 긴 여정에 대한 암담함을 표현하곤 하셨다. 14살 터울의 내 동생은 우리 집을 한층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주축이면서도 엄마가 어딜 마음 놓고 편히 못 다니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생인 내가 학교 갈 준비를 할 때쯤 엄마는 동생이 두고 간 수학 익힘책이나 실로폰을 학교에 갖다 주러 가시곤 했고, 학원에서 돌아와야 할 동생이 오지 않았을 때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샜을 때'- 엄마는 우리 아파트는 물론 옆 아파트 놀이터까지 샅샅이 뒤지며(?) 동생을 데리고 오셨다. "어휴, 내가 이 나이에 이래야겠니!"라는 말과 함께.
학교에 교과서를 들고 가거나 놀이터 미끄럼틀 속까지 살펴야 하는 일은 없었지만,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온 동생을 맞이하며 1. 알림장을 살펴보고 2. 숙제를 시키고 3. 숙제를 검사하고 4. 가방을 잘 챙겼는지 확인하고 5. 그 밖의 해야 할 일들을 일러주고 확인하는 일을 줄줄이 소시지 해치우듯 해야 했다. 잘 시간이 됐지만 자기 싫어하는 동생을 거의 반 강제로 침대에 보내기까지. 옆에서 봤을 땐 그저 가벼운 건 줄 알았던 숙제 검사 같은 일이, 이렇게 기빨리는 거였다니.
동생의 감독관 역할을 하다 보니 금세 저녁 때가 되어 있었다.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도 잠시, 회사에서 돌아오신 아빠가 라면을 끓여주신다기에 한숨 덜었다. (아빠의 야근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엄마가 왜 슬며시 좋아하곤 하셨는지 진심으로 알게 됐다.) 한 자리를 비워놓고 세 명이 둘러앉아 후루룩 먹는 라면은 맛있었지만 후루룩 소리 뒤엔 왠지 모를 정적이 있었다.
뒤이어 설거지, 주방 정돈, 그리고 내게 매달린 '엄마 이름표'가 가장 강렬하게 나에게 속삭이는 그것 '아침 준비'.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늦은 밤 미리 해놓기로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으면서 굉장히 많은 걸 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쌀을 씻고 채소를 손질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나만의 시간! 씻고선 뒹굴거리며 핸드폰을 보다 보니 자야 할 시간이었다. 아.. 하루가 이렇게 짧았나.
둘째 날
다음날 아침. 평소 나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는 동생을 깨우기 위해 모닝콜만 몇 개를 맞췄던지. 잠결에 모닝콜 소리를 듣고 후다닥 일어나 동생을 깨우고선 깬 듯 자는 듯 침대에 누워 입으로만 '밥 먹었니', '이 닦았니', '옷은 잘 입었니'를 읊었다. 내 입은 쉬지 않고 동생을 챙겼던 것 같은데 어느새 동생이 '언니 일어나' 하고 속삭이는 소리에 꾸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분명 아르바이트를 가는 중인데 몸은 이미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것 같이 피곤했다. 그래도 잠시 후면 그 이름표를 반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홀가분했다. ㅠㅠ 1박 2일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다행히 난이도 최상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라든가 빨래를 하고 너는 일이라든가 하는 것은 엄마가 미리 해두고 가셔서 (엄멘ㅠㅠ) 동생을 챙겨주고 밥을 하고 간단한 정리만 하면 됐었................
지만 옆에서 엄마를 도와드릴 때랑 직접 그 일을 할 때랑은 확실히 달랐다는 것. 평소엔 귀찮을 만큼 안부를 묻는 -집에는 몇 시쯤 와? 밥은 먹었니?-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으니 왠지 어색했다는 것. 또 집에는 고요한 분위기가 맴돌던 것.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너무나 가벼운, 일이랄 것도 없이 그저 '엄마, 나 어디 다녀올게.'하는 연락 한 통이면 되는 일이 엄마에겐 너무도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는 것. 자잘한 집안일들에 치여 엄만 엄마의 시간을 '안' 가진 게 아니라 '못' 가진 거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
멀리 떨어져 지내던 이모들과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을 다 풀어놓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엄마 이름표'를 다셨다. 아, 어떻게 몇십 년 동안 그걸 팽개치지 않고선 버텨오신 건지!
집으로 가는 길, 문자가 왔다.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