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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바 Dec 23. 2016

3. 기다림

 


  한 이틀 정도 걸릴 거예요.


  꽉 채운 카메라 두 개만큼 귀찮음이 늘었지만 사진관에 가야 했다. 그렇지 않음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니.. 귀차니즘을 가득 안고 지하철도 타고 계단도 올라 카메라를 맡겼다. 그렇게 이틀이라는 기다림을 받아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어떤 사진을 찍었더라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이와의 약속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보다 미리 도착했을 때 이곳으로 오고 있을 그를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어떤 신발을 신었을까 잠은 잘 자고 온 걸까 머릿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그 순간부터 이미 그는 나에게 오고 있다. 눈이 올 거라는 내일의 예보를 들은 오늘 밤은, 자고 일어나면 창 밖에 하얗게 깔린 풍경을 먼저 떠올리고, 사고 싶었던 물건을 주문하고 나선 벌써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택배 아저씨를 기다린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몸을 간질이는 즐거운 기다림을 좋아한다.


  열 장은 찍어야 한 장을 건질 수 있다며 핸드폰 셔터음들이 제대로 끝을 맺기 전에 손가락을 떼지 않는 스타일이다. DSLR을 사용할 때에도 마찬가지. 찍어서 바로 볼 수 있으니 내가 눈을 감았으면 부릅뜨고 다시 찍으면 되고 손 모양이 어정쩡하면 자세를 다시 취하면 되고.

  하지만 일회용 카메라를 손에 쥘 땐 상황이 달라진다. 실수로 누른 셔터 한 번이 고스란히 한 컷 가득 살색 혹은 검정이 되어오니까. 더더욱 신중하게, 인생은 타이밍! 임을 되새기면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서 쿵쿵거린다' 던 시의 한 구절처럼, 내가 꾹 눌렀던 한 컷 한 컷이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일렁인다. 웹하드에 내 사진이 올라왔다는 문자를 받기 전까지의,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설렘 때문에 나는 일회용 카메라의 장난 같은 셔터를 계속 누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틀이 지나 받아본 사진들엔 내가 이런 걸 찍었나 싶은 사진들도 있고 모서리에 보이는 야속한 손가락도 있다. 미처 떠올리지 못한 장면들이 기다림이 주는 선물인 양 그렇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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