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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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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바 May 13. 2018

백분의 일


 나름의 양념이 있었다. 아, 양념은 '양말 신념'의 줄임말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선물할 것. 특별함의 기준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양말 선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혹시나 자주 선물하면 좋아하는 마음이 가볍게 여겨질까 그게 싫었다.


 2017년과 2018년의 경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떠나간 것들 투성이었다. 공허하고 아팠다. 남겨진 채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백분의 일


 우리가 만날 확률. 백 켤레의 양말 중 이 집 문 앞에 양말이 붙게 될 확률이.

 문 너머엔 한국어로 쓰인 쪽지를 읽지 못할 외국인이 살 수도, 내 글씨가 너무 작게 느껴져 쪽지 읽기를 포기할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계실 수도, 그럼에도.


생각치 못한 일


 이 동네에 이사와 느꼈던 낯섦.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그 속에 사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진짜 계기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알 수 없는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양말을 선물하고 싶다. 누군가도 이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백분의 일은 우사단로 어딘가, 그날 내 걸음이 닿는 곳들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최대한 비밀스럽게, 들키지 않을 것. 양말과 쪽지를 붙이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 게 핵심.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첫째,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나름의 신념에서 탈피해보는 것. 둘째, 이 소확행을 누군가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기대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 같은 무모한 프로젝트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18년 5월 우사단로 골목 한 칸에서, 베바*



베바 : 이인칭 관찰자의 이름. best of best bareun을 줄여 베오베바, 또 한 번 줄여 베바라는 이름이 나왔다. 요즘은 실명보다 더 자주 불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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