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났다. 두 눈에 초점을 잃고 양말 백 켤레를 지른지. 지르고 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방 한 켠, 택배 박스가 보인다. 양말 백 켤레. 큰일이다. "저기요 제발 저 좀 꺼내주세요"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다. 매일 밤 귀마개를 끼고 잠에 들었다,
는 뻥.
제목이 필요하다.
양말 프로젝트는 뭔가 딱딱해. 프로젝트를 부르는 이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 달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어느 날 갑자기 띠링~ 하고 세상이 놀랄만한 제목이 뙇! 나올 줄 알았다.
안일했다.
생각을 안 하니 생각날 리가 있나. 그럼 생각을 해보자. 더 생각이 안 났다. 생각을 해도, 안 해도 생각이 안 난다면 생각없이 살ㅈ.....
어쨌든 점점 쫄렸다. 아 내 두 달치 월세... 제목을 지어야한다.
처음 잡은 키워드들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양말을 걸어두곤 하니까, 크리스마스나 산타는 어떨까? 봄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르잖아...
몰래 양말을 걸어둘 거니까 선물이라는 표현은...? 인심쓰는 것 같아서 별로. 또 소소한이나 행복한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지양하자.
그렇게 스쳐간 35536725개의 제목 후보. 그중 몇 개를 소개한다.
- 비싼 : 비밀싼타의 줄임말. '비싸게 주고샀다'는 생색이 담긴 거 같아서 탈락.
- 우산 : 우사단산타의 줄임말. 우산이라고 해놓고 양말인 게 함정인 거 같아서 탈락.
- 바삭 : 내 이름의 '바'와 socks의 '삭'을 따서 만들었으나 홍대의 맛있는 튀김집이 떠올라 ppl 오해 받을 것 같아 탈락.
- 문앞의 크리스마스이브 : 너무 길어서 탈락.
- 다시, 이브 : 가수 이브가 슈가맨에 나온 거 같아서 탈락.
- 당신이라는 세계, 가장 아래의 행복 : 너무 고백하는 거 같아서 탈락.
망했다. 이거다 싶은 게 없다. 제목 고민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우울했다. 단순하고 싶었는데. 이미 글렀다.
백분의 일?
또 한 달이 지났다. K와 카페였던 그날은, 결판을 내자! (고 나만 비장했다.)는 심정이었다.
마주 앉아 아이데이션으로 가장한 아무말 대잔치가 열렸다. 의미없는 단어들을 끄적거리던 내가 말했다.
백분의 일? 백 켤레 중 한 켤레라는 뜻도 있고... 또...
폭발적인 (1명의) 호응에 힘입어 드디어 이름이 생겼다.
백분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