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오랜만이다. 확률이란 단어를 꺼내어본 게. 그러니까 내 기억 속 확률은.. 고등학생 때 확률과 통계 수업을 희미하게나마 떠올리게 하는 단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순열과 조합이니 시그마니 같은 걸 배우다가 내 머리가 마그마가 돼 버리는 것 같아 수포자의 길을 걷게 한 그런 기억의 조각 정도.
확률, 어쩌다보니 양말 프로젝트를 하며 가장 많이 떠올리는 말이 됐다. 우리가 만날 확률, 이 문 앞에 양말이 붙을 확률, 이 양말을 받게 될 사람이 이 편지를 읽을 수 있을 확률, 이 양말을 받고 좋아할 확률 등등....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쓰이는 확률은.... 바로 일기예보와의 확률!
일기예보가 맞을 확률
얼마 전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일기예보에 대한 약간의 불신이 있는 편이라 (미안해요 기상청..)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이람. 일기예보 완전 적중! 정말로 그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갑자기 일주일의 방학이 생겨 당황스러웠다. 이번주까지 해서 몇 켤레... 하고 생각해둔 계획이 단숨에 빗물처럼 주르륵 흘러가버렸다.
일기예보가 틀릴 확률
밤 9시부터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던 날은, 석가탄신일이었다. 마침 쉬는 날이라 그동안 못 했던 것만큼의 양말을 붙이겠노라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카페 한 켠에 앉아 오른팔에 통증이 느껴질만큼의 편지를 다 쓰고 고갤 들었을 때, 창밖엔 비가 오고 있었다. 고작 오후였다. 바리바리 싸온 양말들을 집에 두고 다시 나왔다. 아니 9시부터 온댔으면서! 괜히 툴툴거렸다.
백 켤레 중 한 켤레의 만남을 가지기 위해선, 대문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것.
그렇게 비가 올 확률, 비가 오지 않을 확률, 일기예보가 맞을 확률, 일기예보가 틀릴 확률 사이에서 양말을 챙기고 편지를 쓴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는 지금, 어젯밤 써놓은 편지와 챙겨온 양말들을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가야한다. 매일 매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늘도 확률 앞에서 의문의 1패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