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 45주년
기록만으로도 알 수 있다.
45년 전 광주가 맞이했던 5월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절규였고, 하나의 비극이었다. 단어 몇 개, 문장 몇 줄만 읽어도 그날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가늠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지난 12월 3일. 헌법 질서를 위협했던 ‘비상계엄 선포’라는 현실은, 마치 봉인되어 있던 1980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날을 직접 겪지 않았던 이들에게조차, 광주의 5월은 단지 과거가 아닌 현재의 공포로 다가왔다. 그 두려움과 고립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당시 신군부는 광주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모든 폭력을 한 도시에 집중시켰다. 길을 걷다 총에 맞은 사람, 항의하다 머리를 다친 노인, 속옷만 입은 채 구타와 성폭행 당한 시민들. 수영하던 소년은 총탄에 숨졌고, 임산부마저 목숨을 잃었다. 폭력은 육체를 넘어 인간의 존엄까지 짓밟았다.
기록된 문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고통이 전해진다. 하지만 그날, 광주는 폭력에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어머니는 정성껏 지은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도청을 지키다 끝내 목숨을 잃었으며,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택시 기사들은 다친 시민을 자진해 병원으로 옮겼고, 버스 기사들은 시위대의 한가운데 함께했다. 누군가는 도망치는 학생을 자신의 집에 숨겼고, 심지어 유흥업소 여성들, 중·고등학생들까지 이 거대한 흐름에 함께했다.
그리고 45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계엄’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떠올랐다.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계획은 광주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시민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불러왔다.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엄 계획에 관여한 전직 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나온 단어들을 기사로 전한 뒤, 나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조사 팀장으로 활동했던 윤경회 씨를 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하셨어요.
가슴이 웅웅 울리면서 너무 무서웠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어딘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될까 두려웠다고요.
예전에 겪었던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었던 거죠."
그러나, 아무리 증언하고 기록해도 아직도 그 진실을 왜곡하고 조롱하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말이 ‘또 하나의 의견’으로 대우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차별 폭력과 국가 권력의 탄압으로 얼룩졌던 한 도시의 봄은, 결코 함부로 축소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이자 교훈이다. 그리고 그 상처 위에 피어났던 대동세상의 이상은 오늘의 우리 사회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푸르른 5월, 그 생명의 계절과는 너무도 달랐던 광주의 어두웠던 봄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 날을, 작은 꽃 한 송이로 다시 떠올린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