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6주년을 맞이하며
좋아하는 사진 한 장이 있다.
그것은 1945년 11월 3일,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계단에서 찍힌 환국 기념사진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흑백사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한 시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 그들이 짓고 있는 미묘한 감정들이 마치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사진 속에는 총 64명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임시정부는 끊임없는 압박과 감시 속에서도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이어왔다. 무려 여덟 번이나 청사를 옮기며 망명정부로서의 명맥을 유지했고, 결국 충칭에 정착해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며 일본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비록 미국 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지만, 끝내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그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자주독립'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사진이 찍힌 그날, 해방을 맞이한 독립운동가들은 ‘공식적인 정부’가 아닌 ‘개인’의 신분으로 귀국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남쪽을 점령한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이 온몸을 던져 지켜온 독립운동의 성과는 새로운 권력의 질서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흑백의 톤 속에서도 각자의 표정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조국으로 돌아가는 감격이 서려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이 사진 속 인물들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위풍당당한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노년의 독립투사들. 그들의 눈빛에는 후회도, 회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부심이 가득해 보인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신념을 지켜온 사람들.
이 사진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이 품었던 꿈과 신념은 오늘날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사진 속 인물들은 침묵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장준하의 회고록 『돌베개』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길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1945년 11월, 해방된 조국을 향해 떠난 그들의 여정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친 망명과 투쟁의 끝자락이자, 새로운 시작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15명의 요인들은 미군정이 보낸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이미 해방된 지 석 달이 지나 있었으나, 그들에게 허락된 귀환은 결코 빨랐다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심정으로 조국으로 향했을까. 수송기 안은 묵직한 정적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설렘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낯설게 느껴지는 귀환. 그 순간, 침묵을 깨고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보인다, 한국이!”
[돌베개, 장준하, 2015, 342쪽]
남색의 끝없는 바다 위로 손톱만 한 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모두가 창가로 몸을 기울였고, 숨죽였던 감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조용히 읊조리는 듯했지만, 점점 목소리는 커져 갔다. 수송기 안에 가득 찬 노랫소리는 기쁨의 환호이자, 쓰라린 세월을 견뎌낸 자들의 통곡이였다.
장준하는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것은 노래가 아닌 하나의 절규였다.”
[돌베개, 장준하, 2015, 343-4쪽]
회고록에 따르면, 노투사들은 의자에 앉은 채 시계추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감격에 몸을 맡겼다고 한다. 몇몇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몇몇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그날, 수송기 안에서 울려 퍼진 애국가는 단순한 국가(國歌)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지난 생애를 관통하는 함성이었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실감의 눈물이기도 했다.
이 회고록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선명한 장면이 그려졌다. 감격과 슬픔이 교차하는 극적인 순간. 울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뒤섞인 공간. 돌아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는 노투사들. 이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들의 절규는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기약 없는 망명 생활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새로운 시련이었다. 해방은 이루어졌으나, 그들의 염원과는 다른 시대의 흐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는 때로 너무도 가혹하다. 하지만, 그날 그들이 목이 터져라 부른 애국가만큼은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늘 유동적이다. 시대가 바뀌면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한다.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실들이 새로운 세대의 눈앞에서 다시 조명되거나 때론 낯선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인류 사회가 진보하면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독립운동가들의 이념을 문제 삼으며 역사를 재단하려는 이들이 많아졌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일부 세력은 특정한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의 정당성을 흔들고자 한다. 물론 학문적 연구와 비판은 자유롭고,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념 논쟁 속에서만 가두려는 태도는 씁쓸하기만 하다.
나는 독립투사들의 정치적 성향과 삶의 궤적을 조목조목 따지며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은 학자들에게 맡기겠다. 다만, 나는 그들이 가장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적인 평가가 아니라, 진심 어린 경의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들의 서사를 읽다 보면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낙관이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동료와 가족의 비극 앞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고 단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저항만으로 독립을 이루기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도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시대, 끝없는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흔들림 없이, 거대한 산처럼 강인하게. 그들의 투쟁은 뜨겁고도 인간적이었다. 그 서사를 곱씹을수록 가슴이 아리지만, 동시에 묘하게 따뜻해진다. 그 길을 걸어간 이들에게,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106년 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간 수많은 이들에게, 역사가 언제나 다정하기를.
오늘 어두컴컴한 밤하늘의 별들이 소리 없이 반짝인다. 마음 한 편에 놓여 있는 초의 불빛을 보호하며 그들의 고결한 생애를 온 마음 다해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