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화의 '장강일기(長江日記)’
역사 자료 가운데서도 회고록을 가장 흥미롭게 읽는다.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머릿속에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감각은 실로 매혹적이다. 마치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직접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생생함이 있다. 그래서 특정 시대를 탐구할 때면, 나는 늘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회고를 먼저 찾는다. 그들의 주관적 시선과 체험이야말로, 박제된 연대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진짜 역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다.
군 복무 중 가장 긍정적으로 여겼던 점 중 하나는 독서를 위한 시간을 조용히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복무 기간 동안 펼쳐든 책은 주로 역사서였고, 그중에서도 네 권의 독립운동가 회고록이 유독 깊은 울림을 남겼다.
김산과 님 웨일스의 『아리랑』,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 장준하의 『돌베개』, 그리고 정정화의 『장강일기』. 이 책들을 읽으며, 어린 시절 영화 속에서 동경하던 영웅들이 결코 먼 곳에 존재하는 허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책이 감동과 영감을 주었지만, 가장 강렬한 여운을 남긴 것은 『장강일기』였다. 이 책은 “한국의 잔다르크”, “임시정부의 안주인”이라 불린 정정화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삶을 기록한 귀중한 증언록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군 복무 중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마주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지적인 담대함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19세의 나이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상하이로 향한 정정화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이 되었다.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내와 중국을 오갔으며, 그 과정에서 투옥되기도 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감시가 더욱 강화되자, 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상하이를 떠나 대장정에 올랐다. 해방까지 이어진 피난의 시간 동안, 그녀는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끼니를 마련하며 고된 여정을 함께 견뎠다.
그래도 바람은 불어도 꽃이 핀다. 전쟁과 망명의 나날 속에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8년간의 피난 끝에 임시정부는 충칭에 자리를 잡았고, 독립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정화는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조직해 핵심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현지 한인 유치원에서 교사로도 일하며 한인 2세들의 교육에 힘썼다.
백범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정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미국 OSS(전략사무국)와 손잡아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작전은 무산되었고, 그렇게 정정화와 동료들은 오랫동안 염원했던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해방정국 속에서 친일 청산은 미완에 그쳤고, 정치적 이념 대립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녀가 평생을 바쳐 모셨던 백범 김구는 암살당했고, 남편 또한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인민군과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투옥되어 고문까지 당했다. 결국, 1991년 한(恨)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남긴 회고록에는 평생 지켜온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주어지고 맡겨진 일을 모르는 체하고 내치는 재주가 내게는 없었던 탓이다.”
(장강일기, 1998년, 8장)
정정화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해 독립자금을 조달했고, 기울어가는 임시정부를 묵묵히 떠받쳤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의 활동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했던 동료들의 희생에 비하면 자신은 보잘것없는 존재라며 겸손해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결코 총과 폭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치밀한 조직, 자금, 그리고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독립운동은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정화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탱한 가장 든든한 기둥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조연처럼 생각했지만, 역사는 안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거인이었음을.
그녀가 평생 잊지 못한 한 순간이 있다.
1930년대 어느 여름, 자녀들과 함께 국내 시댁을 방문한 그녀는 독립자금을 마련할 때마다 자신을 숨겨주던 한 집을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두드렸고, 젊은 안주인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안부를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누구시더라?”
(장강일기, 1998년, 99장)
책 속에서 이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당시 그녀가 느꼈을 깊은 허탈감과 회의감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말년에 이 책을 집필한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며 독립운동가들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 가는 현실을 목격하며, 그녀는 자신의 글이 널리 읽히기를 바랐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다시 조명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가 단순한 서술이 아닌 더욱 깊이 있는 역사적 진실로 자리 잡기를 희망했다.
『장강일기』는 1998년 마지막으로 출판된 이후, 아직 몇 권이 시중에서 구할 수 있지만 머지않아 중고 서적으로만 남게 될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귀중한 기록들이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출판사들이 이러한 도서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낡은 표지는 새롭게 디자인하고, 그녀가 바라던 대로 이 역사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사라지면 안 되는 우리 선배들의 기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