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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를 만든다는 건, 수많은 선택지를 줄여가는 일이었다

베베닉스 젖병세척기 전용 세제 개발 과정의 기록

by BEBENIX

젖병세척기 기기가 개발되는 과정 중에

또 하나 신중히 고민하여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젖병세척기 전용 세제였다.



세제를 만드는 일은 애초에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었다.

아이가 매일 입에 넣고 물고 빠는 젖병을 닦는 용도인 만큼,

기기와의 호환성은 물론, '젖병 세정'이라는 본질에 집중하여 필요한 우선순위를 정열했다.



베베닉스 전용 세제의 시작은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모든 프리미엄 젖병 세제가 액상형인 이유,
세척기용 세제도 같아야 하지 않을까?”


경쟁사 제품은 모두 타블렛 타입의 전용 세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처음엔 편의성을 생각하여 타블렛으로 만들 계획을 가졌었다.

"타블렛 타입으로 만들어서 팬시하고 고급스러운 타블렛 보관용 틴케이스까지 만들어야지!" 라고

내 취향에 딱 맞는 틴케이스 디자인 방향까지도 생각할 정도로 편의성이 중요하다고 강하게 확신했다.


하지만

타블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잔여 세제 찌꺼기가 남기 쉽다는 세제 기획자와 개발사의 조언이 있었다.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니 그 차이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차이를 실감한 이후로 선택은 쉬웠다.

우리 세제는 액상으로 만든다.



세제를 액상으로 정했을 때,
나는 곧장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빼야 할 것인가”의 고민에 직면했다.



사실 ‘더하는 일’보다 ‘덜어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건,

그동안 수많은 제품을 기획하며 배운 기본 원칙 중 하나였다.


무향, 무색소, 무방부제, 무증점제.
일명 ‘4無 포뮬러’라는 원칙으로 출발한 이 기준은

그 자체로 엄마인 나에게도, 소비자인 나에게도 필요한 안심의 최소 조건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이 네 가지를 모두 제거하면서도
세정력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한 액상 세제를 만드는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세제를 만드는 많은 브랜드가 ‘좋은 향’을 브랜드 아이덴티티처럼 쓰기도 한다.

특히 젖병용 세제는 단백질이나 유지방이 잘 분해되지 않을 시

특유의 분유 비린내가 남을 수도 있었다.
나 역시 처음엔 분유 비린내를 잡아 줄 수 있는 '인체에 무해한' 은은한 향 정도는 가미해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결심했다.

"단백질, 유지방을 잘 분해하는데 집중하고

'인체에 무해하다고 한들' 그 어떤 불필요한 화학적 성분은 가미하지 않는다."

색소도 넣을 이유도 애초에 없다. 불필요한 시각적 요소는 오히려 불안을 키울 수 있었다.



방부제와 증점제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보존성과 사용감을 담당하는 이 두 성분을 넣지 않고도 세제가 안정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EWG 그린 등급 기준에 부합하는 원료만을 사용해 베이스를 촘촘히 재설계했다.


하나하나의 성분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끈임 없이 되새겼다.

우리는 단순히 세제를 만든 게 아니라, “매일 쓰는 안심의 기준”을 만드는 거라고.




안심할 수 있는 성분으로 기초 설계를 마친 뒤에 고민한 건

얼룩과 찌꺼기를 확실하게 없애는 클렌징 기술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먼저 우리는 단백질과 유지방에 특화된 3중 효소 조합을 설계했다.
분유 속 단백질, 아기 이유식의 기름기, 젖병 벽면에 달라붙는 미세한 잔여물까지

효소가 먼저 작용해 분해하고 자연 유래 계면활성제가 부드럽게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세척 후 ‘마무리’의 문제였다.
나는 자사 제품은 물론, 타사 젖병세척기 기기를 테스트하면서
젖병 표면에 남는 희끗희끗한 물 얼룩을 보면 매번 찜찜함을 느꼈다.


물 얼룩은 세척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수돗물 속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성분이 마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흔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깨끗하게 닦아도

'더럽게 보이는', '찝찝한' 심리적 문제가 반복된다.
인체에 유해한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할 소비자의 마음은 해소가 필요했다.


타사 제품 후기를 보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 ‘물 얼룩’에 대해 심리적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물론.. 린스를 넣는다는 쉬운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화학 성분을 추가하는 선택이었고,
그건 세제를 만들며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방식이었다.


소비자의 불만족 요인을 해소해야 할지, 안전성이라는 대원칙을 지켜야 할지.
선택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깊은 고민에 잠을 못자서 그런가) 퇴근 후 씻으며 거울을 봤더니,

얼굴에 뾰루지가 난 거다. 정말 눈에 띄게!!!!


뾰루지를 케어하기 위해 스팟성 패치를 붙이고 누워서 생각했다.

뾰루지는 한 번 나면 좀처럼 쉽게 낫지 않고, 결국 흔적을 남긴다.

결국, 애초에 뾰루지는 "생긴 후에 없애고 케어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나지 않게 관리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이미 생긴 얼룩을 지우는 린스를 쓰는 게 아니라,

애초에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 생각은

"물 얼룩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완전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이어졌다.


린스를 더하지 않고도 얼룩을 제거하는 방법.
그건 바로 물속 미네랄을 사전에 분해하거나 결합을 방지하는 방식이었다.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고 세제 개발 담당자가 도출해준 솔루션은

베이킹소다 + 구연산나트륨 + 글루콘산나트륨이라는 세 가지 성분 조합이었다.


이 조합은 물 얼룩의 주요 원인인 칼슘과 마그네슘을 세정 초기에 중화하고,

세척이 진행되는 동안 이물질이 서로 엉켜 표면에 남는 현상 자체를 줄여주는 효과를 냈다.

이 방식은 물 얼룩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길이었다.


고민이 전방위적으로 깊어지면 이렇게 뜻밖의 곳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결국 완성도 있는 제품으로 완성해 주는건 개발자지만,

서로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결국 최고의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언제나 짜릿하다.. ☆




그 다음 고민은 기기와의 궁합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품이 ‘풍성해야 잘 닦이는 느낌’을 받지만

기기 안에서는 거품이 많으면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또 다시 반복된 테스트.


세정력은 충분히 확보하면서도, 저거품 포뮬러를 구현해냈다.
기기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헹굼도 빠르고 세척 후에도 잔여 거품 없이 말끔한 마무리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고농축 설계.

매일 쓰는 제품인 만큼, 사용량은 줄이고, 효율은 극대화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부담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어야 했기에,
단위당 세정력까지 빈틈없이 계산했고 딱 4ml만으로도 충분한 세정 효과를 만들어 냈다.




대망의 마지막 여정은 용기 선택이었다.

우리는 방부제를 쓰지 않기로 했고, 그 말은 곧 보관 환경까지 제품 완성의 연장선이라는 뜻이었다.

빛과 온도에 민감한 자연 유래 성분들을 지켜내기 위해

차광성, 밀폐력, 내용물 안정성을 갖춘 용기를 선택했다.

디자인은 물론, 뚜껑의 조임, 내부 압력 변화까지 직접 체크하며

세제의 본질이 마지막까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고수한 모든 선택의 기준은 하나였다.


작은 불편이 반복되어 돌봄이 지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세제를 쓰는 모든 순간에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이 스며들지 않도록 돕자.


돌봄이란, 아주 작고 반복적인 일을 기꺼이 해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기에.
우리는 그 마음이 쉬이 지치지 않도록 하루 한 번의 위생 루틴을 완벽하게 설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루틴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는 세제를 완성했다.


이 세제를 사용하는 수많은 엄마, 아빠들의 밤이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안심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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