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사고법 둘
회사에서는 자주 수수께끼를 풉니다. 일정은 당겨야 합니다. 문제는 생기면 안 됩니다. 비용은 줄여야 합니다. 품질은 더 좋아야 합니다. 서로 부딪히는 조건을 놓고 또렷한 답을 내놓으라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이 공주에게 말합니다. 벌거벗지 말고 오라. 그렇다고 옷을 입고 와서도 안 된다. 말은 장난 같지만 묘하게 익숙합니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회사에서도 자주 듣는 말투입니다. 공주는 물고기 그물을 두르고 왕 앞에 섭니다. 옷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벌거벗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공주는 정답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답의 모양을 만든 것입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현실의 문제는 교과서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조건은 자주 충돌하고 지시는 종종 모순처럼 들립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반듯한 답보다 작동하는 답입니다. 표면만 보면 답이 없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합니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가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정과 품질이 부딪힐 때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공정을 다시 나누고, 우선순위를 바꾸고, 기준을 조정하면 둘 다 조금씩 지키는 길이 생깁니다. 보고서도 비슷합니다. 짧게 쓰라는 말은 내용을 비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부터 보이게 쓰라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줄이라는 말이 비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먼저 보여주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믿음이 가는 실무자는 복잡한 조건 앞에서 짜증부터 내지 않습니다. 누가 틀렸는지 따지기보다 지금 풀 수 있는 매듭부터 찾습니다. 문제를 키워 말하기보다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바꿉니다.
회사 일도 그렇고 사는 일도 그렇습니다. 세상은 늘 옳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돌아가는 답을 먼저 요구합니다. 좋은 엔지니어는 맞는 말만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답, 현장에서 실제로 굴러가는 답을 끝내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