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이 다 맞는건 아니니까

엔지니어의 사고법 하나

by 굿이너프

가만히 있는데도 마음이 바쁜 날이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먼저 걱정하고, 오지도 않은 내일을 지레 피곤해하는 날입니다. 문제는 아직 생기지 않았는데, 생각은 벌써 대책 회의 중입니다.


‘너의 상상으로 만든 불안에 지지 마.’ 짧은 말인데 오래 남는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 중에는 실제로 벌어진 일보다 머릿속에서 먼저 벌어진 일이 더 많습니다. 마음은 참 부지런합니다. 증거도 없는데 예측하고, 한 장면만 보고 결론을 내리고, 작은 걱정을 데려와 큰 이야기로 키웁니다. 가끔은 뇌가 방송국 PD보다 편집을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생각을 곧바로 사실처럼 믿는 데 있습니다. ‘분명 잘 안 될 거야.’ ‘또 꼬이겠지.’ ‘역시 나는 안 되나 봐.’ 이런 문장들은 대개 사실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해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 해석을 진실처럼 받아들입니다. 생각은 그냥 떠오른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판결처럼 읽습니다. 생각을 다 믿어서 힘든 날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은 저절로 생깁니다. 과거를 꺼내고, 미래를 꾸미고, 불안을 상상합니다. 좋은 상상도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 쪽에 더 성실합니다. 뇌는 생존에는 관심이 많지만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까지는 그리 친절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하루도 머릿속에서는 쉽게 비상사태가 됩니다. 특히 밤에는 더 그렇습니다. 낮에는 그냥 작은 실수였던 일이 밤이 되면 인생 전체의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밤 11시 이후의 생각은 조금 할인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이럴 때면 부처님 말씀도 참 합리적이십니다.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생각을 바라보라’는 말. 수행의 언어라기보다 인생의 태도를 말씀하신 듯합니다. 생각을 없애라기보다 생각과 나를 붙여놓지 말라는 뜻.


‘나는 끝났다’가 아니라 ‘끝났다는 생각이 지나간다.’ 이 차이는 하루의 무게를 바꿉니다. 비가 오는 것과 내가 비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우리는 자주 머릿속 목소리를 자기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늘 맞는 목소리라면 왜 같은 걱정을 계속 반복하겠습니까. 생각은 필요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대비하고, 반성하고, 앞을 내다봅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이 존중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중에는 그냥 지나가면 되는 것도 많습니다. 문을 두드린다고 모든 생각을 다 들여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생각에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또 왔구나.’ 그 말 한마디면 됩니다. 쫓아내지 않아도 됩니다.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설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알아차리면 됩니다. 불안이 왔구나. 걱정이 또 말을 거는구나. 오늘도 내 머릿속이 혼자 너무 열심히 사는구나. 조금 웃어도 됩니다.


우리의 뇌는 참 열심히 일합니다. 문제는 가끔 안 해도 되는 일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생각을 만드는 힘만큼 생각을 바라보는 힘도 우리 안에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생각을 전부 믿지 않는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마음이 조금 시끄럽다면 그건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뇌가 조금 부산한 것뿐입니다. 생각은 저절로 떠오르지만, 우리는 생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끝까지 확인하고 믿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동안 엔지니어로서 기술을 통해 문제를 푸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제 엔지니어의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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