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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너 Apr 09. 2021

체험, 흔들리는 층간소음의 현장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온갖 소리와 진동

우리 집에 머물며 이 나라를 여행하러 놀러 온 우리의 가족과 지인들은 하나 같이들 말한다. 

이곳의 집들은 너무 클래식하고 이쁘다고 말이다.

거주용으로 바라보고 실제 살아보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건축연도가 1900년대 초중반인 경우인 집들이 상당히 많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도 1930년대 완공된 주택으로, 각자 출입문이 있는 주택이지만 서로 벽을 맞대고 있고, 한 골목 따라 10채 이상이 나란히 정렬하고 있는 구조다. 

집이 너무 오래됐다 보니 이 나라에서는 지붕, 벽, 배관, 화장실 등 집 곳곳을 보수공사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시청에서 허가를 받아 심지어 다락방을 새로 만드는 대대적인 공사를 하기도 한다.


그 비용이 매우 비싼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소요시간이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한국처럼 빨리빨리 일하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매우 느리고, 점심시간이나 주말에는 공사하지 않는다. 한국의 친정 집이 물 새는 현상으로 인해 화장실 욕조, 타일, 변기 등 전부 다 드러내고 공사한 적이 있는데, 이틀 반나절 정도만에 완료됐었다. 

여기서는 우리 집 화장실을 고친 적은 없지만 최소 1-2주 이상 걸릴 것 같아 보인다. 

한 지인은 이곳 공사 업체와 일할 때는 그들이 갑이고, 도를 닦는 듯한 여유 넘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을 사서 공사, 인테리어 디자인 다 완료하고 이사해서 들어가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집을 유지, 보수하는 일에 있어 이곳은 스스로 해결하는 범위가 물론 생각보다 굉장히 넓은 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인들을 보니 이사할 때 기존 부엌 상, 하부장을 뜯어내고, 바닥 장판 자재를 직접 깔고, 벽 페인트 칠을 하고, 조명을 달고 커튼을 맞춰 다는 일 등을 알아서 해결하는 편이다. 

남편은 이사 간 친구네 커플 바닥 까는 것을 도와주러 건 적도 있다. 


그런데 비용, 시간, 이 두 가지를 뛰어넘는 놀라움이 있었으니 바로 층간소음, 혹은 벽간 소음이다. 

서로 벽이 붙어있는 가옥 구조이다 보니, 위아래로 방음에 매우 취약하다. 나보다 집, 재질 등에 대해 좀 더 일가견이 있는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에 비해 벽이 매우 얇고 콘크리트보다는 나무를 쓴 벽이 많다. 


하루는 우리 왼쪽 옆집에서 이중창으로 교체하는지 창문 틀을 모두 뜯고 설치하는 공사를 며칠 동안 진행했었다. 드릴 소리가 나니 이어폰을 끼고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유쾌하지 않은 소리가 계속 나는 수준의 소음이 아니었다. 

책상 위 소품이 흔들리고, 방 안 공기가 진동하는 느낌이 온몸에 전해지고 귓가에 울려댔다. 

인과관계를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얼마 후 화장실 타일 4-5개 정도에 걸쳐 수직으로 실금이 간 걸 발견했다.


최근 오른쪽 옆집에서는 부엌과 거실이 있는 0층을 싹 고치는 더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엄청난 드릴 소리와 우당탕탕하는 각종 소음들이 얇은 벽을 가뿐히 넘어 우렁차게 우리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아침 9시에 시작하고 오후 5시 정도면 끝내서 기상을 방해하거나 조용한 저녁시간에 심각한 소음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집중력에 크게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정도의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었다.


굳이 공사할 때가 아니어도 지극히 사적인 소리는 찾아온다.

우리 집이 조용할 때는 옆집 2살 배기 아이가 우는 소리도, 옆집 남자애가 게임하다가 화나서 소리치는 소리도, 때로는 조금은 우렁찬 재채기 소리마저 듣게 된다.  

옆집이 세탁기를 돌리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세탁기가 돌아가면서 그 진동에 우리집도 미세하게 흔들린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보기에' 클래식하고 고즈넉한 집이 안식처가 되어주긴 어려울 듯하다. 벽과 바닥을 타고 넘어오는 일정 수준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다 소음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않았던 수준의 소음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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