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경유 여정

이건 영화일까.... 현실일까.... (22.08.31.수.)

by 지형

Ⅰ. 14시간의 첫 장기 비행


기내에는 한국인들이 즐비했다. 아무리 유럽행 비행기라도 인천에서 출발한 탓인 것 같았다. 내 좌석을 찾아갔을 땐, 내 옆자리에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눈치로 내가 거기 앉을건데 조금 비켜줄래? 라는 신호를 보내니, 그는 금방 칼 같이 반응했다. 비행기에서 어떤 짐을 꺼내두면 좋을지 몰라 자리에 앉은 채로 나는 기내에서 필요한 USB 폰 충전 선, 무선 이어폰, 안경 등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넣고 싶었는데, 그 기운을 감지했는지 옆 좌석의 사람은 대신 올려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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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내식 및 인천국제공항에서 발권한 티켓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본인은 독일로 업무차 출장을 가는 중이란다. 나 역시도 그가 소개한 내용에 똑같이 나의 입장만 적용하여 그대로 나를 소개했다. 나의 사정을 들은 그는 상당히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아일랜드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여자친구를 거기서 만났으며,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한국과 다른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역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적당히 그의 이야기에 대꾸하고 있으니, 비행기가 금방 이륙했다. 비행기가 상공에 도달해서는 그도 말하는 것을 멈췄다. 기내 전체가 어둑해지고 모두가 잠들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탑승한 터키 항공에서는 승객들에게 공통으로 수면용 안대, 담요, 수면 양말 등의 어메니티가 지급했다. 난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교통 수단에서 쉽게 잠들 수 있기에 어메니티의 도움 없이 쉽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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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들어 있는 것도 잠시, 생각보다 기내에서 온전히 잠들어 있지는 못했다. 한 번 잠에서 깨버리면 잡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생각보다 유선이와의 6개월 간 이별이 많이 힘든가보다. 어쩌면 유선이보다 그럴 지도. 해외에서 혼자 장기간 산다는 경험도 처음이라는 점, 완성되지 않은 실력의 스페인어로 소통을 해 나가야 한다는 점, 어딘가 의지할 사람이 그곳엔 하나도 없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있지만 사실 가장 불안한 건 하나 밖에 없었다.

유선이가 곁에 없다.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꾹 참는 게 버릇이었던 나는, 유선이를 만나고 조금씩 변해 왔다. 작은 일부터 하나씩 털어놓는 법,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 등 마음 속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는 모습으로 변해 왔다. 그렇게 이러한 행동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돌연 스페인으로 가고 있다. 유선이와 가족 그 누구에게도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가장 크고 거의 유일한 불안 요소이다. 자꾸만 불안감이 마음을 휘잡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너무 잡생각에 휘말려 있다 스스로 피곤해져서 다시 잠드는 정도...?



Ⅱ. 비상 착륙


잠에서 깼다 잡생각이 들었다를 반복하다, 기내에 갑자기 누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외치는 비명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살려달라는 뜻임을 깨어있는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승무원들이 조용하고도 다급히 비명의 근원지로 찾아간다. 그리고 급히 비명을 외치는 승객을 기내 복도로 후송하고 응급 조치를 취한 듯 보였다. 승객이 복도에 후송되자마자, 기장이 방송을 통해 한국어로 그리고 영어로 기내 승객 중 의사나 간호사가 있는지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았는지, 모두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승객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승무원들이 계속해서 좌석 사이의 복도를 지나다니며 수건과 물을 환자에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 의료진이 없었던 나머지, 기장은 갑작스런 경로 변경을 알렸다. '승객 여러분, 응급 상황으로 인해 저희는 잠깐 비상 착륙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 바랍니다.' 약간은 어리숙한 한국어였지만 목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방송을 함과 동시에 예정에 없던 경로 변경을 시스템에 입력하느라 급했나 보다. 나는 그렇게 기장의 안내처럼 카자흐스탄 공항으로 비상착륙하게 되었다.

비상 착륙 때 바라본 풍경

비상착륙을 하고선 약 3시간 가량 비행기가 정차해 있었다. 그 사이 카자흐스탄 공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행기에 드나들고, 응급 처치를 받은 승객의 좌석을 촬영해 가는 등 조치를 취했다. 다급한 상황처럼 당시 내 머릿속도 복잡하고 초조해졌다. 원래 내 항공편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이스탄불 공항에서 3시간의 대기 시간을 가진 후 말라가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그렇다, 경유 대기 시간이 3시간이라는 말은 난 비상착륙으로 인해 지금 비행기를 놓쳤다는 말이었다. 실제 이스탄불 공항에 착륙해서도 다음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항공사 자체에서 내린 비상착륙 판단이었기에, 이스탄불에서 말라가로 경유하고자 하는 승객들을 기다려주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어림 없었다. 깔끔하게 비행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Ⅲ. 경유편 결항 및 재예약

난 사실, 홀로 해외를 떠나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장시간의 비행도, 그 비행에서 비상착륙을 한 적도, 그로 인해 경유편을 놓친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이억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영어도, 스페인어도 겨우 할까말까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경유편을 놓친 것이 나에게 굉장히 큰 위기로 다가왔는지, 금방 의연해졌다.(어쩌면 현타가 와서 감정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비행기에서 내린 후 나는 아무 직원을 붙잡고 경유편 티켓을 내보이며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물었다. 첫 직원은 나에게 계속 직진하라고 일렀다. 첫 직원의 말처럼 나는 곧장 직진했다. 하지만 이스탄불 공항이 너무 컸던 나머지 약 7~8개의 무빙워크를 걸어야 했는데, 무빙워크가 거듭될수록 나의 불안은 점점 커졌었다. 무빙워크가 사라지자 내 눈 앞에 보인 풍경은 경유를 위한 여러 게이트가 보였다. 내 비행기는 이미 떠나고 없는데, 이 게이트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감정이 없어졌다. 실성이란 말을 아는가? 그 당시 내 모습을 떠올린다면 실성하는 것이 정확했다. 해결책도 모르고 국제미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 비행기에 실려 있던 내 짐은 어떻게 되는 것 일까, 말라가 대학 OT는 갈 수 있는 걸까 등 온갖 걱정이 들면서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모든 게 부질 없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불현듯 나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가족과 유선이가 생각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뒀다. 내 상황이 지금 위기이긴 한데, 뭐...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해결해봐야겠다고.

이스탄불 공항 갓 착륙.jpg 나의 경유편을 찾아 눈이 빠지게 쳐다 본 비행기 시간표

공항 내 표지판을 쳐다보며, 나는 우선 터키 항공사의 환승 센터로 향했다. 나는 환승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니, 센터로 가면 문제를 해결해 줄 직원이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직원을 찾아가니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익일 오전 6시 항공편을 새로 끊어주었다. 사과는 전혀 없었다. 유럽인들이 본인의 업무 영역에서 벗어난 업무상 오류나 실수에 대해선 일말의 미안함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미안한 내색이 하나도 없으니 살짝 화가 나긴 했었다. 난 확실히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사람인가 보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나보고 짐을 찾고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1박 머무른 뒤에 익일 항공편을 탑승하면 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정확한 해석인지는 모른다. 지금까지도. 영어 듣기에서 손 뗀 지 약 4개월이 되었을까, 어렴풋이 이해한 직원의 안내를 따라 나는 수하물을 찾는 곳으로 향했다.
수하물은 찾지 못했다. 내가 도착하니 컨베이어 벨트가 가동하다 말고 중단되었다. 지금에서야 아는 사실이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다는 것은 수하물을 모두 내렸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 사정을 모르고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찾아가 물었다. 컨베이어 벨트 끝이야? 나 짐 안나왔는데? 머릿속으로 금방 떠오르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대충 저러한 의미를 표현했다. 다행히 불친절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터키 항공사의 수하물 센터로 가보라고 나에게 일러주었다. 그렇게 나는 센터로 향했다.
센터로 가니 입구에 직원 한 명이 서 있었다. 내가 찾아가 수하물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니 입구의 직원은 나에게 번호표를 주며 기다리라고 말했다. 당시 센터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데스크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수하물에 문제가 있었겠지 싶은 생각과 동시에 이렇게 수하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면 내 수하물을 못찾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내 앞에서 갑자기 대기 번호를 부르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약 12시에서 1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 같다. 얘네 밥 먹어야 하나? 수하물을 얼른 찾고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하늘이 잠깐 도왔을까, 간절해지던 찰나 드디어 내 번호가 들렸다. 데스크로 다가가 나는 자초지종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 직원이 내 정보를 바탕으로 수하물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정보 조회 후 직원은 나에게 정보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 수하물은 내일 나의 항공편에 자동으로 이동된다고 한다. 나의 듣기가 정확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내가 이해한 바를 되물었다. 다행히 긍정적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수하물이 해결되었으니 호텔로 찾아가야 한다. 환승 센터의 직원 말에 의하면, 공항 입구 근처에 호텔 안내 데스크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다행히 호텔로 향하는 과정은 수하물 위치를 찾는 것과 달리 손쉽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그 날의 내 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없었다. 호텔로 향하는 셔틀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터키 셔틀버스의 기사는 난폭하게 운전했다. 부산에서 살아서 였을까, 나는 딱히 기사의 운전에 대해 위험하다는 인식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외국인들은 달랐다. 특히 스페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승객이 꽤나 큰 목숨의 위협을 느꼈는지 기사에게 천천히 운전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Slow, slow를 연신 외치던 사이, 기사는 갑자기 갓길에 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손님을 향해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는 터키어로 크게 소리쳤다. 불만을 제기한 스페인 승객은 다소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옆에 있던 자신의 아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금 당당하게 천천히 운전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 소통가능한 언어가 없었기에 그저 기세 싸움으로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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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셔틀 안과 다른 바깥 풍경

다행히 셔틀버스는 생각보다 금방 출발했다. 기사가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봐서 인지 아니면 다른 셔틀 콜이 잡혀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셔틀은 다시 호텔로 향하기 시작했다.



Ⅳ. 유로 파크 호텔과 산책

내가 묵게 된 호텔의 이름은 유로 파크 호텔이었다. 입구에서부터 5성급을 과시하는 듯한 별 5개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경유편을 놓친 이후로 처음 미소를 지었다. 터키 항공사가 터키에서 가장 큰 항공사라는데, 다행히 브랜드 값을 하는 대처 능력을 보유한 것 같았다.

로비의 데스크에선 앞으로의 일정과 호텔 이용 안내를 받았다. 셔틀이 익일 오전 4시에 도착할 예정이니 시간에 맞춰 로비에서 대기해 달라는 안내와, 점심 그리고 저녁 식사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무료로 제공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렇게 이스탄불에서 무료로 1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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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파크 로비

객실을 배정 받고 나는 카드키를 이용해 나의 방으로 들어섰다. 방은 한국의 숙박시설과 비교하면, 4성급 호텔 수준과 비슷했다. 유럽에서는 꽤나 5성급의 기준이 관대한 듯 보였다. 아니면 한국인들이 너무 까다로운 건가?

객실에서 짐을 풀고 곧장 유선이와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이제 힘든 여정은 끝났으며, 호텔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이 나에게 전달했던 내용들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내 걱정을 꽤 했었는지, 나의 말을 듣고는 안도하며 이제 터키를 구경하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침대에서 내리 긴장을 풀며 잠들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산책이라도 하고 와야겠다.


산책하기 전 시계를 보니 호텔에서 점심을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곧장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은 입구에 안내 데스크가 있었고 뷔페 형태와 레스토랑 형태를 동시에 갖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해외 첫 혼밥인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나의 얼굴을 흘깃 보더니 미소 지으며 영어로 응대했다. 자리에 앉아서 대기하면 음식을 가져다 주겠다는 말이었는데, 당시 나는 직원의 안내를 전부 이해했는지 스스로 의문이었다. 다시금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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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크 점심(좌측) 및 저녁(우측)

자리에 앉아 대기하니 다른 직원이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에피타이저용 스프와 메인 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한 번에 제공한 듯 했다. 제공된 음식은 문제가 없었으나, 한 가지 눈치 보였던 것은 데스크의 직원과 달리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인종차별인가? 물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냥 성격이 사글사글하지 않은 직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피해의식에 조금 찌들어 있던 지라 예민하게 생각했던 듯 하다.

음식의 맛은 그저 유럽에서 흔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유럽에서 식사를 해 본 적은 처음이었으나, 직감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짜고 양식 요리의 모습을 한 음식. 유선이와 이곳에 온다면 호텔 내에서 식사하진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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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파크 레스토랑 입구와 내부

식사 후 호텔 바깥으로 산책을 나왔다. 호텔의 주변은 도로가 둘러싸고 있어 마치 고속도로와 도심 도로를 잇는 곳 사이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딱히 특별할 게 없던 풍경이라, 나는 조금 더 호텔로부터 벗어났다. 호텔에서 벗어나니 점차 이국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터키가 형제의 나라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아는 바가 없었지만 확실히 터키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곳곳에 꽂혀 있는 터키 국기들과 사람들. 한국과는 다른 자동차 번호판들과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에게 모두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본 풍경들로 미루어 보아 산책 다녔던 장소들은 대개 주거지역 같았다. 아파트로 추정되는 건물들과 주거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 아이들이 노는 풍경 등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이스탄불,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들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들뜨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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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 드러누운 귀여운 강아지와 이스탄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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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하며 뛰노는 아이들과 이스탄불 풍경

지금부터 교환학생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