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정일텐데, 이렇게 눈물을 흘릴 줄이야.. (22.08.30.화.)
오전 7시에 눈이 떠졌다. 떠나는 날이라는 생각에 잠을 깊게 자지도 못했지만, 동시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정신이 깼다. 옆에 누워있는 유선이를 바라보니 다시 눈물이 맺힌다. 한 3~4일 전부터 줄곧 아침마다 그래온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당일이 되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20~30분이 지났을까, 유선이도 일어났다. 나와 달리 유선이는 평소 아침처럼 웅얼웅얼거리며 내 품에 안겨 있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서로 오늘은 아무런 날도 아니라는 듯 잘 행동했다. 하지만 나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괜히 서로가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유선이가 출근 준비를 끝냈다. 처음에는 나도 유선이와 함께 짐을 챙겨 나가려고 했으나, 시계를 보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괜스레 짐을 들고 나가면 캐리어가 바닥에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별로였다.
유선이와 함께 밖을 나왔다. 당시의 기록을 남기는 이 시점에 그 날 아침의 날씨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완전 화창했던가 아님 구름이 조금 끼어 있던가,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다래락이 있는 건물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선이가 말했다. 여기서 안고 이제 혼자 가겠다고. 애써 외면해왔던,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던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포옹을 하려고 하니 난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꾹 참고 웃으면서 씩씩한 모습으로 잘 다녀오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다 망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선이가 내가 너무 눈물을 쏟아내니, 되려 의연해진 모습이었다.
서로 포옹하고 각자 잘 다녀오라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헤어졌다. 난 유선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유선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유선이 뒷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끝까지 지켜보았다. 지금 가버리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아서.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도 의식되지 않았다. 조금 걷다 이따금씩 뒤돌아 손을 흔들어 주는 유선이를 보며, 눈물을 흘림과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힘든 이별을 하는 만큼, 반드시 내가 생각하는 목표를 이루고 오겠노라고. 그렇게 유선이가 건물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나는 기어코 발걸음을 돌렸다.
마이바움까지 돌아오는 길은 훌쩍거리며 돌아왔다. 눈물을 수습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서 돌아갔다. 아무래도 그 당시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으리라.
유선이 집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도 신경 안쓸 수 있는, 방안엔 오롯이 나 혼자만 남겨져 있다. 다시금 오열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이후로 이렇게까지 울어본 건 처음인 듯하다. 절제가 되지 않기에 그냥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유선이와 이곳에서 보낸 지난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같이 공부하고, 밥을 먹고, 씻고, 누워서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고 등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찰나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6개월 간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
진정된 후론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잡고 광안대교를 지나 누나 집에 도착했다. 누나 집에 올라가기 전, 엘레베이터 거울의 내 모습을 보았다. 눈이 완전 부어 있었다. 짐을 이제는 정말 다 챙겨야 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어 퉁퉁 부은 내 눈은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누나를 만났다. 누나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엄마는 내 짐 챙기는 것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도 마지막으로 내가 가져갈 짐을 확인하고 소파에 앉아 쉬었다. 그동안 엄마는 내 눈치를 애써 살피는 듯 했다. 젊은 시절, 아빠의 해외 유학으로 인해 6개월 이상의 시간동안 작별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유선이와 내가 서로 눈물을 흘린 것을 아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서일까, 1시간 가까이 엄마와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누나가 잠에서 깨고 우리 가족은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영도에 있는 그라치에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누나가 깬 후로는 평소 모습처럼 나는 가족과 깔깔거리며 웃고 대화했다. 엄마는 그렇지 못한 듯 했지만.
'그라치에'라는 식당에 도착하니 아빠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아빠 얼굴을 보니 엄마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아빠는 되려 아무렇지 않고 나에게 씩씩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별로 긴 시간도 아니긴 하지만, 건강하게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했다. 반면 엄마는, 미리 인사를 해둬야 될 것 같다며 나에게 포옹을 했다. 엄마의 정말 헤어져야 할 순간에 인사를 하면 눈물을 못 참을 것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됐지만, 갑작스런 포옹에 오히려 내가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날 뻔했다. 눈물을 흘릴 뻔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정말 내가 떠나는 구나 하고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식당에서는 시금치크림 뇨끼, 감자뇨끼, 루꼴라 쉬림프 오일파스타, 토마토 뽈로 파스타를 주문해 먹었다. 뇨끼의 맛은 대체로 대연동에 있는 비스트로 정재와 비슷했다. 파스타는 면이 익은 정도가 마음에 들었고, 결과적으로 음식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다만 엄마와 나는 평소만큼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마냥 기쁘기만 한 날은 아니라 그랬나 보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우리 가족은 피아크로 향했다. 원래, 그라치에 근처의 카페를 가려고 했으나 카페 주인이 우리가 밥 먹는 동안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가게 문 앞에는 '잠시 자리 비웁니다. 2시간 동안'이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일순간 나를 쳐다봤다. 카페 주인 공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이해했다. 나 때문에 카페를 갈 수 없었다는 것을.
피아크에 도착해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 2시간 동안 줄곧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나와 엄마가 1월에 스페인에 올 것이라는 점, 아빠가 누나가 두 번씩이나 스페인에 가는 걸 못마땅해 한다는 점, 우리 가족 모두가 이야기 하는 동안 한 명씩 피아크 화장실을 간 것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소소한 일들이 있었다.
주차장에 내려와 부모님과 헤어졌다. 다행히 서로가 웃으며 작별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엔, 바로 다음에 곧장 관광기업지원센터로 가서 특강을 진행해야 하는 바람에 슬픈 감정에 젖어들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초청받은 특강 자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 개최된 2022 트래블톤 내 섹션 중 하나이다. 난 작년 2등을 수상한 팀장 자격으로 강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강의 시작 전 행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에게 첨언을 해주었다. 학생들이 현재 곧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발표와 관련한 팁 위주로 강의를 진행해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나는 올해 트래블톤 일정에 대해 미리 알아봤던 지라 차질을 빚진 않았지만, 옆의 다른 연사는 상황이 다른 듯해 보였다. 내가 먼저 발표할 동안, 그 연사와 직원 간에 급하게 대본을 수정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때 속으로 나름 내 자신의 준비성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다.
인생 첫 강의로서, 나는 적당히 느린 어조와 목소리 크기로 강단에서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초반 부에는 사업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선이가 추천한 PT 진행순서는 따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무난하게 아이템에 대해 잘 소개했다. 강의 듣고 있던 학생들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두 번째 순서로 준비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 나의 준비 과정은 사실 공개 석상에서 밝히기 힘든 비하인드가 많다. 2~3명의 교수님과 기업을 운영중인 대표님들께 정말 끈질기게 집착했고, PPT 디자인과 발표 대본 구성에 있어서 많은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랬기에 실제 준비과정에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밝히지 못하는 상황때문에, 두 번째 순서는 다소 말의 논리가 횡설수설하였다. 말을 하면서 이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기에 중간중간 수습하는 듯한 말을 했는데, 이로 인해 청중들이 나를 약간 약(?)파는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마지막 순서 때 인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불안한 마음은 금새 사라졌다. 앞의 순서들보다 거시적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도 전반적으로 적용 가능하면서, 스펙을 준비할 때 필요한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때는 초반부에 졸던 학생들도 정신 차리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이야기의 수위는 교수님과 기업 대표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기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말했다. 내가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이다. 줄타기하는 듯한 수위의 강의를 끝내고 다행히 반응은 괜찮았다. 학생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고, 나를 초청해주신 교수님께서도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되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나의 첫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같은 학교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강의를 끝내고 교수님께 이번에도 동아대학교 학생들이 트래블톤에 참여했는지 여쭤보고 참여했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이 누구인지도 알았지만, 불현듯 유선이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꼰대처럼 훈수두겠네!". 때마침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거니와, 유선이 말이 생각이 나 그냥 센터를 떠났다. 또 어차피 스페인 가서 계속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테고. (이 글은 유선이가 읽는다면, 자책하지 않기를 꼭꼭! 바란다.)
강의를 끝마치고, 난 누나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곧장 향했다. 차에서 누나에게 스페인의 문화와 생활 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누나는 스페인에서 2주 만에 600만원을 훌쩍 지출했기 때문에, 이 점을 염두하고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방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누나와 나는 출력해야 할 서류들을 프린트하고 수하물을 맡겼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니 30분도 안되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누나는 나의 비행시간까지 같이 기다리는 게 귀찮았는지 얼른 가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누나와 나는 금방 헤어졌다. Cool.
김해공항에서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에서 각각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정리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했는데 막상 정리하고 나니 별 거 없었다. 오로지 길을 무사히 찾아갈 것인가 걱정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비행기가 오고 대기 중이던 사람들과 나는 순서대로 기내에 올랐다. 그리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나는 눈만 깜빡였을 뿐인데,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길래 어이가 없었다. (아침에 오열하느라 피곤했나...?)
김포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공항철도 노선의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지하철은 일반 지하철의 배차 간격과 비슷했다. 그래서 차질 없이 나는 무사히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간의 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내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향하는 입구에 다다르면, 3개의 길이 보인다. 길 별로 게이트 숫자들이 잔뜩 적혀 있는데, 무려 100가지가 넘는 게이트가 있기에 숫자를 바라보면 괜스레 혼란스러워진다. 처음에 나는 무작정 가운데 길로 갔다. 만약 길을 잘못 들어갔더라도, 같은 제1터미널인데 무슨 문제가 있으랴 생각했다. 다행히 내 예상대로였다. 문제 없었다.
공항에 들어서고 나는 수하물을 위탁함과 동시에 티켓을 발권했다. 외항사이긴 하지만, 공항 체크인 및 수하물 데스크에는 한국인 직원들만 배치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조롭게 탑승 준비를 마쳤다.
공항에서 나는 유선이와 일반 전화와 영상통화를 계속 했다. 유선이가 퇴근하기도 했고, 나 역시 대기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연 유선이가 어떤 문서들을 알집으로 압축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부탁 받던 당시에, 나는 유선이 컴퓨터로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부탁하는 건지 의문이 있긴 했지만 알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압축해달라던 파일들은 모두 유선이의 편지였다. 죄다 공인중개사 과목이름으로 둔갑한 편지들이었다. 유선이가 영상통화로 이 사실을 일러주었고 기내에서 심심하면 읽으라고 했다. 왠지 기내에서 읽으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예감에 나는 읽어보는 '시도'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나는 카메라를 통해 유선이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유선이가 많이 슬퍼했다. 앞으로 6개월을 어떻게 견딜지 모르겠다며 오열했다. 마치 당일 아침 내가 유선이 집에서 혼자 오열하던 모습 같았다. 난 어떤 말로도 유선이를 위로해 줄 수 없었다. 나 역시도 눈물이 났고, 정말 이제는 6개월의 여정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그래도 돌연 우리는 어떤 웃긴 이야기를 나눴는지 영상통화를 끝맺을 즈음에는 웃으며 인사했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연락하겠다고, 그동안 무사히 출근해서 퇴근하고 연락하자며.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